실패보다 더 많은 꿈을 죽이는 건, 의심이다
누군가에게 항공사 3 관광이라고 하면
(정확히는 4관왕이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뼛속까지 승무원인줄 알겠지만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승무원은 키 크고 예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꽤 확고했다.
가장 걸렸던 건 바로,
치아미소.
승무원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지런한 치아와 환한 미소였다.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지 마”라고 말했다.
웃으면 얼굴이 커 보인다나?
그래서 내 어릴 적 사진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는
무표정이거나, 정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옅은 미소를 띤 사진들뿐이다.
그렇게 한 번도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어본 적 없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나는 신체 구조적으로 치아미소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승무원들의 트레이드마크인
그 밝고 당당한 치아미소는
아무리 연습해도 도저히 내 것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선생님, 중학교 때는 호텔리어, 고등학교 때는 상담사.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까지도 내가 승무원이 될 거라고는 감히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막연하게나마
‘여행 관련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그렇게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혼자서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휴학계를 내고, 약 한 달 동안 혼자
영국과 독일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여행이 끝나고 나니, 정말로 이상하게도
“승무원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던 날,
문득, 왠지 몇 년 안에 이 도시에 다시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여행의 여운 같은 건 아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여기에 일하러 오게 될지도 몰라’ 하는
낯설지만 또렷한 직감 같은 거였다.
비행기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승무원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아주 갑자기,
‘나도 저 유니폼을 입고 저 안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승무원’이라는 단어를 내 삶 안에 조심스레 끌어들인 순간이었다.
아마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생각보다 용감하다는 걸,
낯선 사람들과 말 섞는 게 꽤 재밌다는 걸,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나름 잘 적응한다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스스로에게 자꾸 되물으면서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승무원’이라는 꿈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