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실도피

남이 너에 대해 내린 판단이, 너의 현실이 되게 두지 마

by 꿈꾸는라일리

사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승무원’이라는 꿈을 당장 진지하게 품진 못했다.

막연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나는 안 되겠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4학년 2학기, 복학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진로 상담 시간에 교수님께 "승무원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첫마디는 이랬다.


"승무원? 그건 키 큰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 저기 혜진이처럼."


어디서든 내가 승무원을 준비한다고 말하면 항상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돼."

"승무원은 예뻐야 하는 거 아냐?"

"승무원 일하기 힘들다는데, 왜 하려고 해?"

어쩜 응원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점점 지치고 의심스러워졌다.

‘역시 나는 승무원이 될 수 없으려나…’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을 앞두고, 신촌에서 토익 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다.

우연히 필리핀 어학연수 박람회 배너를 보고, 홀린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상담만 받아보자' 했는데,

나 왜 지금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있지..?


그 당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게 “나 세부에 갈 거야. 너도 같이 갈래?” 협박 같은 제안을 던졌다. 그는 당황했지만 마침 휴학 중이었고,

“그래, 나도 갈게.” 라며 흔쾌히 따라오겠다고 했다.

사실 남자친구랑 같이 가는 시나리오는 없었다.

그래도 혼자보단 낫겠지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도 없던 세부 어학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훗날 남편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안 따라갔으면...차일 것만 같았어.”




갑작스러운 세부행이었지만,

물론 나에게도 조금의 이유는 있었다.

토익 점수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지만 영어 말하기 실력은 제자리. ‘이러다 면접에서 아무 말도 못 하겠네’ 싶은 조급함이 늘 따라붙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편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1년 이상 취업 준비 중인 사람들은 정말 흔했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면, 적어도 2년은 독방 같은 현실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취업이라는 이름. 그땐 참 답답하고, 숨 막히고, 끝이 안 보였다.


‘그럼 마음먹기 전에 두 달쯤 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 나는 세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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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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