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나누는 꿈은 현실이 된다.
내가 세부에서 승무원이라는 꿈을 진짜 품게 된 건,
영어 실력이 늘어서도, 세부가 즐거워서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그 질문,
"So, what is your dream?
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그냥 영어 회화 연습용 질문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말했다.
“Umm… I want to work at a global company.”
“Maybe something like marketing?”
나조차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그저 무난하고 어색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매일 듣고, 또 매일 대답하려다 보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 진짜 꿈은 뭘까?”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어느 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I… want to be a flight attendant.”
그 순간 선생님의 반응,
"Wow! That’s a beautiful dream!"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말 한마디가,
그저 '나한텐 안 맞는 것 같아' 하고 덮어뒀던 꿈을
다시 ‘내 것’처럼 꺼내보게 만든 순간이었다.
세부에 갈 때,
나는 영어가 엄청 늘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어학연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고,
말하기 실력이 조금만 나아져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영어보다 더 큰걸 얻었다.
바로
"꿈을 입 밖으로 꺼내는 용기."
그때부터였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이거다’라는 확신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나를 바꾸기 시작한 건.
필리핀 수업에서 가장 놀랐던 건,
대화 주제가 늘 가족, 행복, 꿈, 좋아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너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질문을 계속 받고, 또 대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안의 마음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리고… 승무원이 되고 싶다.
그 이야기를,
나는 수도 없이 반복해서 하게 되었다.
한때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공식이 있다.
R = VD.
Reality = Vivid Dream.
‘생생한 꿈은 현실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꿈꾸고,
입 밖으로 내뱉고,
그 방향으로 행동하면
결국 현실이 된다는 공식.
승무원은 내게, 그 공식 그 자체였다.
세부에서의 두 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제 막 영어공부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즈음,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2달간의 어학연수가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해외 살이가 조금 익숙해졌다는 정도?
아마…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의 남자친구와 함께 갔기 때문에
너무 열심히 놀러 다닌 탓도 있을 것이다.
세부에서 동남아의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한국에 돌아오니 어느덧 날씨는 선선해져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여름을 더 좋아한다는 걸.
콩벌레처럼 움츠러들던 어깨가
햇볕을 머금은 공기 속에서
조금씩 펴지기 시작할 즈음
드디어, 임원 면접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