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느끼고 하늘을 볼 줄 아는 아이에게서 배운다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아침저녁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고, 한층 높아진 하늘이 “가을이 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
며칠 전 부산에 문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혼자 가는 길이라 목적과는 달리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 지하철로 옮겨 가면서 낯선 도시를 한껏 느꼈다.
낯선 길이 색다르기도 했지만 약간 긴장을 했던지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버스에 몸을 실은 후 3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자야지 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우주였다. 학원이 다 마칠 시간이 아닌데 전화를 했길래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우주야, 무슨 일 있어? “
“여보세요? 엄마, 엄마 어디야?”
“어.. 버스지? 엄마 집에 가고 있어. 왜왜왜? 무슨 일인데?”
다급한 내 목소리와는 달리, 꽤나 명랑한 목소리로 우주가 말했다.
“아~ 엄마 그런데 하늘 봤어? “
“어? 하늘? 왜?”
“아까 영어 하다가 하늘을 봤는데, 작은 구름만 있었거든. 근데 영어를 조금 더 하다가 하늘을 보니까 구름이 강아지 모양도 있고 거북이 모양도 있었어. 엄청 신기했어 엄마~ 엄마도 봤어?”
그제야 나는 움츠려든 어깨를 펴고 볕을 막으려고 쳐놓은 버스 커튼을 걷었다. 맑았고, 높았고, 군데군데 구름들이 예쁘게 놓여 있는 하늘이었다.
“엄마는 맑은 하늘이 보이는데, 신기한 구름이 있어? 사진 찍었어? “
“아니, 사진은 못 찍었는데, 엄마한테 말해주고 싶었어.”
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학원 수업 중에 하늘을 보는 아이가 너무 귀엽기도 하고 구름까지 관찰하는 녀석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집에 도착을 하니, 종이를 가져와서 아까 봤던 구름 모양을 그려주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그림처럼 이렇게 눈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자기 눈에는 귀여운 강아지와 거북이로 보여서 너무 신기했다고 했다. 엄마도 봤어야 하는데..라는 말과 함께. 나도 오면서 찍어둔 하늘 사진을 보면서, 엄마가 본 오늘 하늘은 이랬다고 말을 해주었다.
유튜브를 많이 봐서 걱정, 짧은 영상에 중독될까 게임만 많이 할까 봐 걱정을 달고 살았는데 정작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은 나였고, 땅만 보고 걷는 것도 나였다.
아침에 나를 대신해서 등교를 시켜준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언니가 그런다.
“우주가 아침에 가는데 가을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 “
“아 그래?”
“그래서 무슨 냄새냐고 하니까, 이상한 이 냄새가 가을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가을 냄새를 찾아서 킁킁거렸어.”
언니 표현으로는 생선 굽는 냄새도 나고 풀냄새도 나고 여러 가지 냄새가 났었는데, 아이가 전어를 알리도 없고 도무지 무슨 냄새를 가을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후각을 곤두세웠을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9살 우주에게 가을은 하늘에서도 오고, 코로도 들어오고 사방에서 오는가 보다. 딱 잘라서 이렇다 저렇다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다니.. 뭘까 이 아이 인생 한 3회 차 정도 되는 건가.
그날부터 나는 매일 하늘을 본다. 그리고 특이한 날은 꼭 사진 한 두장을 찍어 둔다. 혹시 아이가 이야기하면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서. 또 코를 열고 냄새도 깊이 맡아본다. 다르게 느끼는 것, 관찰하는 힘. 이런 걸 아이에게서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