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태풍 콩레이가 지나갔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이파리마다 가을이 젖어든다. 바람이 한결 서늘하다. 지난 강풍에 흩어진 밤을 주우려 나선다. 마대자루와 밑면이 붉은 고무로 코팅된 목장갑 그리고 조선낫을 챙긴다. 뱀에 물리지 않으려 장화도 신는다. 행여 밤 가시에 민머리가 찔릴까 밀짚모자도 잊지 않는다.
부처님 모신 대각전大覺殿 뒷길로 돌아 이미 봐 둔 자리로 찾아 올라간다. 밤나무 비탈 아래 벌어진 밤송이가 여럿 나뒹군다. 밤톨이 잘 여물었다. 발로 한 쪽을 밟고 낫으로 밤 껍질 사이를 벌려 알밤을 꺼내려는데 왼손등이 수상하다. 모기다.
반대편 손으로 가차 없이 짓이긴다. “나무아미타불” 모기를 뭉개며 입으로는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붉은 점이 면장갑에 번진다. 피부가 부풀어 오른다. 가렵다.
“까닭 없이 남의 숨을 끊지 말라.”는 계문을 어기고 말았다. 자비심이 낄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에 모기를 후려쳤다. 속상한 마음에 ‘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더니...’라며 괜히 속담 탓만 한다.
모기가 미워서 죽인 건 아니다. 물론 사냥으로 느끼는 쾌감 때문도 아니다. 아마도 아득히 오래전부터 말라리아나 뇌염 등으로 숱하게 목숨을 잃었던 선조들의 DNA에 모기를 향한 공포와 증오가 깊게 새겨졌으리라. 한편 모기라고 내가 좋아서 주둥이를 살갗에 꽂았겠는가. 더 춥기 전에 알을 낳으려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을 테다.
본능과 본능이 만나는 찰나에는 행동이 무엇보다 앞선다. 번식을 위한 에너지를 얻고자 달려든 모기. 그리고 병들지 않으려 손바닥을 쳐든 나. 행동과 행동이 맞섰다. 암모기의 몸은 터졌고 나는 피를 봤다.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거나 인과법因果法에 따라 대가로 받을 벌이 두렵다기보다는,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피할 수 있던 살생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뿌리는 모기 기피제나 팔목에 차는 모기밴드가 없었겠는가. 다만 방심하고 챙기지 않았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평소에 모기장으로 막을 수 있던 애꿎은 희생도 많다.
나를 해친다는 이유로 밤마다 독한 모기향을 피워댔다. 그러면서 비틀거리며 요단강을 건너는 모기를 두고 ‘나무아미타불’ 외마디 염불로 뒷수습을 부처님께 떠넘긴다. 비극을 희극으로 마무리 짓는 꼴이다.
마음 챙기는 공부(有念工夫)에 부지런한 수행자라면, 뱀과 악연 맺지 않으려고 장화를 준비했던 그 정성으로 모기 쫓는 대비도 미리 했어야 하지 않을까. 무는 모기에 개의치 않을 만큼 마음의 힘이 넉넉지 않았기에 나의 게으름이 더욱 안타깝다. 의도치 않게 한 생명을 앗았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서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죽음이라야, 그 순간 간절히 외는 ‘나무아미타불’ 일념一念에 새 삶이 깃들리라. 햇살이 언 땅을 어루만지듯.
온종일 부처께 기도 올리며, 계속 모기를 죽이네. -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