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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ul 15. 2021

내면만큼 외면도 챙김 하기

메를로 퐁티의 몸, 그리고 에어컨 필터

시중에는 내면의 단단함을 말하는 책이 많다. 외면을 가꾸는 일은 치장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그런 책들이 인기가 많아지는 것을 보며 역시나 내가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선견지명이 있어 미리 그렇게 살고 있었음을 자부했다.


그러다 건명원에서 메를로퐁티의 몸에 대한 시각을 접하고 나서부터 우리 몸의 신체성. 그리고 나의 신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메를로퐁티가 있기 전, 철학에서는 몸이란 정신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즉, 몸의 한계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 우리가 더 자유로운 인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몸이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니라 몸이 있기에 우리는 만지며 감각하며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들의 논의를 보고 있자면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어리석어 보이는 이런 논의가 내겐 익숙했다. 내가 몸이 나의 한계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늘 내면의 성장, 지적 성장에만 치우쳤고 외모에는 무관심했으니 말이다.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나를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바르지 않던 수분크림까지 꼭꼭 챙겨 바르고, 외출 시에 선크림도 발랐다. 주기적으로 내 손으로 내 얼굴 만지며 거울 앞에 서니, 나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내면에만 치중하던 시절에는 나를 제삼자의 거리에서 바라봤거만 내가 만지는 나는 바로바로 촉각으로 느껴진다. 거리가 0인 셈이다. '나'에 서서히 스며들어 나를 더 어여삐 관리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했고, 살이 빠졌고, 내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면을 키운다고 머리를 싸맬 때보다 외면을 관리한다고 운동하고 피부 관리하고 건강한 식단을 생각하는 일이 더 나를 사랑하는 기분이 든다. 이상하다. 몸에 관심을 가지니 '나'가 사랑스럽다. 정신적으로 나를 뜯어 분석하고 골몰하던 때보다.


서점의 시류가 어떻든. 언제나 중요한 것은 조화고 균형이다. 건강한 몸, 관리하는 몸을 통해 '나'가 좋아진다.

나와 가까워진다.





이 글은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교체하고, 조수석에 앉아 든 생각을 적은 것이다. 핸들을 잡고 좌우로 돌리고, 기어 변속을 하며,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에어컨 필터를 교체하며 느꼈기 때문이다. 직접 주유를 하고, 에어컨 필터를 교체하고, 타이어 공기압을 넣어가며 자동차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나니, 이제야 자동차와 친밀해진 기분이다. 이제는 앞 만보기 바쁜 초보를 벗어났는지 차에서 각종 소리가 들린다. 고쳐야 할 신호가 들린다. 내 몸의 감각을 알아채며 나와 가까워지듯 차도 하나하나 손수 정비를 해가며 가까워지나 보다. 관리하면 가까워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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