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사에서의 새벽과 밤을 기대하며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등산을 하러가도 일출을 보거나 일몰 전에 하산하다보니 내가 찾지 않는 시간대의 산이 궁금했다.
요즘의 나는 특별한 고민없이 평화롭기에 그저 고요한 새벽과 별이 빛나는 밤이 있음으로 충분했다.
여러 절 중 특별히 만경산사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운탄고도때문이었는데, 운탄고도는 탄광이 있던 시절 석탄을 나르던 길임을 일전에 아빠가 알려주신 이후로 언젠가 한 번 걸어보고 싶단 마음이 든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1달에 1번 뿐인 '운탄고도 걷기 체험'이 당장 3일 뒤에 있었고 이미 예약은 마감되었다.
나는 오전9시가 되기를 기다려 산사에 전화를 걸었고, 이미 마감인 줄 알지만 꼭 좀 참여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다행히 취소한 팀이 있다고 연락을 주셔서 엄마와 함께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왠걸! 막상 예약이 확정되고 나니, 가고싶지만 자리가 없어 못간다고 할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마음이 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영주 부석사와 같은 절에서의 템플스테이를 꿈꿨다.운탄고도에만 꽂혀 예약을 하고 나니 망경산사는 내가 생각한 그런 절이 아니었다. 망경산사는 아주 작은 절이었고, 으리으리한 대웅전과 그곳까지 걸어가는 끝없는 돌계단도 없었으며, 전각에서 첩첩산중의 원경을 내려다 보는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한 산사가 아니야...
그때 마침 나는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첫 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제주로 한달살기를 하러 온 사람이 해변을 걸으며 마주친 작가에게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이 생각한 제주가 아니라고말한다. 그말을 들은 작가는 그럼 어떤 제주여야 하는지 물은 다음,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경험해보라고 말해준다.
그 일화를 떠올리니, 내가 상상한 산사는 아니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산사를 향해 굽이굽이 꼬불길을 휘어 올라가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조금 무서웠다. 도착해서 산 속에 아주 작은 대웅전 하나가 덩그라니 서있는 걸 보고는 돌아가야하나? 생각도 들었다.
도착해서 망경산사보다 해발고도100미터가 더 높은 만경사에 올라 해가 넘어가는 걸 바라봤다. 눈을 아주 작게 뜨고 태양빛을 바라봤다. 해가 넘어가기 무섭게 산은 추워졌고, 리본에 새해소망을 적어 묶었다. 내려오는 길에 어둑해진 밤하늘과 낙엽송 사이로 손톱같은 달을 봤다.
산사에서 스님들이 직접 키우셨다는 눈개승마와 야생화나물을 저녁 공양으로 먹으며 또 손톱같은 달을 봤다.
밤에는 목성과 오리온자리를 봤다. 너무 추워서 차 안으로 피신해서 계속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음날 운탄고도를 걸었다. 해를 보고 싶었으나 걸어도 걸어도 해는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코너길에서 해가 불쑥 나타나니 너무 반가웠다.
스님의 지난 인생 이야기와 앞으로의 내 이야기를 나눴다. 찬 바람 속에서 볼 빨개지며 산길을 걷는 게 참 좋았다. 운탄고도의 끝길에서 스님이 따뜻한 보이차를 내주셨고, 시골버스를 타고 산사 근처 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에 마중나온 다른 스님의 트럭 뒤에 열다섯명이 콩나물처럼 실려서 내가 어제 올라온 그 꼬부랑길을 거꾸로 올라갔다. 나는 그때 거꾸로 올라가며 바라본 하늘이 참 예뻤다.
스님은 예약이 다 찼는데도 전화를 걸어 오고싶다고 하는 사람이 궁금했다고 했다. 그 정도의 의지면 와야된다고 했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냐 하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얼굴에 당참이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거라고도 말씀해주셨다.
나는 다시 그 꼬부랑길을 운전해 내려오면서 내가 생각한 산사보다도 더 좋았다고 가슴 속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