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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an 27. 2021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이방인으로 나를 만나기

여행자의 신분은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준다.


홀로 국토종주를 다녀온 후로, 여행자의 신분을 나름 즐기고 있다. 작년까지는 1년에 한 번 정도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었는데, 요즘은 주말마다 매주 달리다 보니 드는 생각이 한결 달라진다. 오랜만에 보는 자연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서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달리고 있는가’에 천착한다.


그러게,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어제 본 하늘과 일주일 전에 본 논이 크나큰 차이가 없는 이 공간을. 이제는 인증 스탬프를 찍는 행위에서 큰 뿌듯함을 느끼지도 않는데. 이제는 자연을 만나는 일이 처음만큼 설레지도 않는데(물론 다시 보아도 황홀하다.) 오르막도 예전만큼 오기를 부리지 않아도 쑥쑥 올라가는데.

등등의 생각이 들자, 그랜드슬램을 도장찍기로만으로 서둘러 달성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 고민을 좀 더 길게 가져가고 싶다. 답을 알아내고 싶다. 궁금하다.



자전거를 타는 이방인

이방인으로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이 좋다.


자전거 한 대와 함께 걷고 있으면, 늘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마치 <나는 걷는다>의 저자가 실크로드를 걸어가는 동안, 매번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하던 질문처럼.

대부분 여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놀라고, 궁금해하고, 어디까지 가며, 어디를 다녀왔으며, 나이가 조금만 젊으면 나도 하고 싶다. 멋있다, 의 대화가 오간다. 그렇게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그 지역에 대한 소개를 받는다. 지역 주민들이 추천해주는 밥집에 가고, 자전거길에서 가까운 명소를 추천받아 잠시 들른다. 내가 하는 여행이지만,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이 된다.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오늘의 여행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두근거리고 설렌다. 누구를 만나느냐로 달라지니까.




다른 나를 만나는 경험

나에게 나도 이방인


수업시간에 stranger-on-the-bus라는 개념을 배웠다. 아무런 연결고리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이야기를 편히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Stranger로서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속마음을 내보이기도 하고, 용기 내어 하지 못한 말을 한다. 솔직해진다. 나도, 주변에서 평가받기 싫어 말하지 못한 나의 꿈을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던 말을 하면서, 나의 귀가 나의 목소리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결심을 단단하게 하기도 한다.


자전거 여행은, 공간의 분리다. 나의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 나를 똑 떼어내어, 내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필요한 몇 개만 들고 들판으로 나서는 경험이다. 여행이 재미있는 건, 이질적인 공간에 나를 데려가는 체험인데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 아닐까.

자전거 여행은 공간의 새로움에, 운동으로 고조된 에너지로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상황까지 더해진다. 그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공간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사람은 변하니까. 좀 더 여유있는 나를 만난다. 대범하고 관대하며,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대인이 된다. 이 여행을 하며, 나도 스스로에게 이방인인 것이다.

서울이었다면 말을 걸지 않았을 우리들은 서로에게 말을 건다.  여유 있는 마음이 여행자와의 대화를 궁금하게 하고,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결국 를 들여다본다. 의외로 그 거울이 깨끗해서 나를 더 세심하게 비춰준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기 위해 달리고 있나 보다.


그런가?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했는데, 결국, 이방인의 신분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인 걸까.

예상치 못한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성장해나가는지,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뜻깊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전거 여행자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대화하나보다. 그밖에,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설레는 일이지만, 지방에 사는 친구들을 자전거로 만나러 가는 일도 날 들뜨게 한다. 친구를 만나러 달려가기도 한다.


안동댐 라이딩: 90km(병산서원, 하회마을)

북한강 라이딩: 74km(친구와의 만남)




왜 달리고 싶은가

같이 홀로 달리고 싶다.


한창 달릴 때는,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달리고 싶다. 겨울은, 유일하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계절. 봄을 기다리는 계절. 이제 더는, 국토종주도 그랜드슬램도 중요하지 않다. 멀리 떠나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할 수 있을 때 자주 달리고 싶다. 홀로 또는 같이, 때가 맞으면 달리고 싶다. 혼자는 외롭고 같이는 괴롭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밤.


오늘까지 내가 아는 것을 적어보았다.

오늘은, 오늘 아는 것 밖에 모른다. 이 너머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할지 나는 늘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

왜 달리고 있는가의 답은 결국, 내가 궁금해서일 것이다.

올해는 자전거를 타고 어떤 것을 보게 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안고 달릴런지. 또 어떤 답을 스스로 내리게 될지.


나는 어떤 내가 될지 늘 궁금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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