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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an 03. 2020

제주반바퀴 시즌1, 제주 환상 자전거길

송악산에서 산방산을 바라보자

제주 반바퀴 시즌1


제주 반 바퀴 시즌1. 제주도 환상 종주는 환상적이라 환상 종주가 아니라, 고리 환 자를 써서 순환하는 모양의 자전거길이라는 뜻이다. 즉, 동그란 모양의 종주길이라는 건데, 처음 들으면 ‘얼마나 환상적이길래?’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에 기가 막힌 작명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환상 곶자왈을 알게 됐는데, 그곳 모양은 환이 아니니, 정말로 그곳은 환상적인가 보다.


제주도 환상 종주길은 234km로, 정직하게 내달리기만 하면, 2박 3일이면 충분하다. 하루에 약 80km를 달리면 되는데, 자전거를 웬만큼 타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은 하루량이다. 내 잔차는 로드바이크지만, 제주도의 노면에는 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해서 MTB로 대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루에 40-50km를 탄다. 함께하는 친구가 자전거를 매일 타던 친구도 아니고, 나 또한 훈련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개인 자전거와 달리, 대여 자전거의 질은 조금 떨어지는지라 큰 욕심내지 않고 이번에는 반 바퀴만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은 제주도 반 바퀴 시즌1이고, 시즌 2는 친구와 함께 내년을 바라보기로 했다.

 

첫날, 저녁 5시 넘어 시작해서 23km를 달려 애월에 묵었고, 둘째 날은 산방산까지, 마지막 날에는 쇠소깍까지 인증 도장을 찍고 제주공항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제주반바퀴 시즌2가 있다! 쇠소깍부터 용두암까지. 그때는 친구가 원했지만 가지 못했던 마라도, 자전거를 싣고 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제주 자전거 여행의 묘미

자전거로 제주를 돌면 좋은 점은, 일단 해안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다는 점이고. 제주에 그렇게 관광객이 많다는데 라이더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다. 달리다가 배고프면 먹는다. 짐도 없다. 가벼운 배낭만 메고 비행기에 가볍게 올라타면 된다. 이름난 명소를 찾아가기 어려우므로 우리가 힘들 때 쉴 수 있는 곳이 명소고, 언제나 그곳 경치는 참 좋다. 살랑살랑 타는 우리에겐 이 일정이 강행군도 아니었다. 234km가 엄두가 나지 않으시는 분들은 우리처럼 제주 반 바퀴도 있음을 기억해주시길. 본인의 체력은 믿을 수 없지만, 제주도 환상 종주는 탐이 난다면 전기자전거를 대여해도 된다. 하지만 젊은이로써 전기의 힘을 빌려 오르막을 오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우리는, 우리의 두 발로 굴러간다! 힘차게! 제주공항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의 코스


제주환상자전거길 234km
1일차 23km/ 2일차 49km/ 3일차 40km

1일 차: 23km 용두암-다락쉼터-게하

2일 차: 49km 해거름 마을공원-송악산-게하

3일 차: 40km 법환 바당-쇠소깍-제주공항(콜밴)


2박 3일. 149km 완료/85km 남음





용두암 시작점에서

첫날은 해가 질쯤에 시작했고, 2박 3일의 일정이라지만 우리에게 온전한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여행은 에피소드라고 내가 사랑하는 언니가 늘 말한다. 역시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진 속에 담기지 않은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웃음 짓게 된다.


첫날은 조금 위험했다. 라이트 없이 최대한 빨리 숙소로 도착하고 다음 날 일정을 고려해서 우리는 공항에서 23km 정도 떨어진 애월에 숙소를 잡았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충분하다고 계산했지만 그것은 날이 밝고, 익숙한 내 자전거를 탔을 때나 초행길이 아닐 때 가능한 계산이었다. 차체가 무거워서 오르막을 오르는데 버거웠고, 내리막을 내려올 때의 브레이크는 내 자전거에 비해 헐거웠다. 첫날은, 바삐 이동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는데 바다를 천천히 바라보지도 어디에 걸터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날 밤, 밤 주행은 최대한 하지 않도록 하고, 초행길에는 인증 도장 부스를 찾는 데에도 허둥대니 조금 더 넉넉하게 시간 계산하자는 것. 그리고 목표지점을 잡아두면 주변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했다.




우리만 아는, 환태평양 평화소공원



우리는 첫날 질주의 밤을 보낸 후, 합의를 했다.


1. 해 떠있을 때만 달릴 것
2. 자주 멈출 것


하지만, 셋째 날에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또 내달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2가지 모두를 충족시킨 날은 둘째 날이었다. 이 날은 숙소를 정해두지 않고 달렸다. 달려보면서 숙소 위치를 정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멋진 곳을 발견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군데군데 멈춰 섰다. 바다가 활짝 펼쳐지는 곳에서도 좀 있다가, 물 보급이 어려운 지역을 지날 때는 땡볕 아래서 꾹 참으며 땅바닥만 보고 오르막을 올랐다. 나무 그늘을 발견하면 안도하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자전거 배낭을 고쳐 매고 고정했다.(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


오랜만에 발견한 보급소인 카페에서는 사장님께서 자전거족을 위해 얼음물을 내어주셨다. 그곳에서 식혜와 수박 설기로 요기를 했다. 맛집과 유명한 곳을 찾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지칠 때 딱 그 지점에 존재하는 것으로도 감사하다. 한창 배고플 때, 먹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맛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오면서 우리는 좀 더 자주 멈췄다. 제주시에서는 바다를 끼지 않은 아스팔트 옆길이 많았는데, 서귀포 시로 넘어오자 바다가 바로 옆에 펼쳐졌다. 반 바퀴를 돌아본 우리가 손꼽는 명소는 환태평양 평화소공원이다. 둘 다 동시에 멈추자고 한 곳이다.

평화소공원

제주에 온 관광객이 그렇게 많다는 걸, 김포공항에서도 제주공항에서도 눈으로 보았는데 자전거를 달리면서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차에 실려 유명 관광명소로 향해서인지 다들 그곳에 모여 있어서인지 우리가 가는 길은 평온하고 한적했다. 우리는 이곳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평화소공원의 잔잔함공명했다.



우리가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을까

내 친구의 제주도 목표는 마라도에 배를 타고 넘어가서 짜장면을 먹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둘째 날 선착장에 최소 1시 즈음에는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느릿느릿 살랑살랑 낭만 넘치는 자전거 여행은 그때 도착할 수 없었다. 우리는 네다섯 시 즈음에 선착장을 통과했다. 처음엔 할 수 있으면 해 보자는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마라도 짜장면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시즌2에서는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맛이 없어도 괜찮다.



무엇을 뽑는 건가요

제주를 달리면서 가장 많이 본 광경은 밭에서 무엇을 뽑아내는 장면이었다. 지역을 넘어도,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밭에서는 무언가를 캐냈고, 트럭이 줄지어서 작물들을 날랐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제주의 5월 말에는 다 같이 대량으로 수확을 하는구나, 정도만 알 뿐이다. 궁금하다.




내가 고른 게하, 2층

둘째 날은 낮에 달려서인지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을 몇 번 마주쳤다. 송악산에 다가올 때쯤에 중년부부 대열을 만났다. 숙소를 정하지 못한 우리는 달리면서, 그분들의 일정과 숙소 등을 물었다. 2박 3일에 완주를 하시려는 분들은, 오늘 아침 제주에 도착해서 지금 나와 같이 달리고 계신 것이었다. 내 옆을 쑥쑥 지나가시면서 보통 모슬포항이나 송악산에 1일 차 숙소를 잡으신다는 말을 해주셔서, 우리도 그곳으로 정했다. 첫날 친구가 고른 게하처럼 나도 말끔한 숙소를 골라보고 싶었다.


지친 친구를 뒤로하고, 길을 찾아오겠다며 한 손에는 지도를 한 손에는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위치 상으로는 이곳이 맞는데 게하가 없다.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올린 순간 2층 간판을 발견했다. 당황스러운 2층.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자전거가 있고, 그래서 2층은 선택지에서 제외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통은 단일 건물에 있어서 1층에 자전거를 두고 올라가서 잤는데, 여기는 1층이 없는 게하였다. 친구는 내 얼굴을 스윽 쳐다봤고, 나는 그대로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방에 올라가서, 친구가 내게,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침구라 말해줬다. 다음 날까지 나는 약간 풀이 죽었다. 다행히 자전거는 게하 사장님이 2층까지 올려다 주셨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시는 분이라면, 숙소가 2층 이상에 위치해있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를 꼭 확인하시면 좋겠다. 그리고 침구의 소중함까지.





다크투어리즘. 섯알오름

사람들이 줄지어서 오름을 올랐다. 유명한 곳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섯알 오름이란다. 일제강점기 시절 진지가 있던 곳이다. 제주에 오기 전, 다크투어리즘에 대해 들은 바 있다. 여행을 하는 여러 방법이 있고, 나는 앞으로 제주를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눈으로 육지에서 여행을 해보자는 결심도 했다. 직면하지 않은 아픈 역사를 이제 마주할 때가 됐다. 우리는 자전거가 있어서 오름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오름이 잘 보이는 언덕에 살짝 올라봤다.

언덕을 오르며 말을 보았다




송악산과 산방산

제주반바퀴 시즌1의 최고의 경치는 산방산이었다. 둘째 날에 너무 힘들고 더워서 편의점에 들렀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님을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지에 불탔던 우리는 오늘, 산방산 넘어서 까지 갈 거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그러다 내일 중도포기한다며, 오늘은 송악산에서 쉬고 내일 살랑살랑 5일장이나 둘러보고 아침 먹고 출발하란다. 그리고 손님을 데리고 돌고래를 구경하러 가셨다. 우리는 그 조언과 힘든 몸 때문에 산방산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송악산에 머물렀다. 다행이었다. 셋째 날 아침, 송악산 게하에서 출발해서 살랑살랑 기어를 놓고 오르는데, 눈 앞에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산방산이 우뚝 서 있었다. 우람하고 범접하고 다가가기 겁날 만큼 크게 우뚝 서 있었다. 아침이라 안개도 서려있어서 더욱 성스러워 보였다. 감동받고 끼역 끼역 페달을 밟아 오르는데, 어제 그 게하 사장님이 한 말씀이 옳았다. 어제 올라왔으면 우리는 오늘 이렇게 산방산을 경이로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어제 올랐다면 높고 미운 산방산으로 기억 남았을 것이다.



삼다도, 바람과 돌 그리고 개

비 예보가 있어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중 라이딩의 공포를 안은 채 달렸다. 제주는 돌도 많지만 바람이 엄청나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오는 내내, 내 자전거를 막아서는 역풍을 얼굴로 맞으며 함께 했다. 제주가 바람의 섬이라는 걸 이틀 내내 실감했다. 내가 제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올 때 바람까지 계산하지는 못했다. 역풍 덕에 평균속도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장자를 공부하면서 대붕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大鵬逆風飛(대붕역풍비)
生魚逆水泳(생어역수영)

대붕은 역풍을 타고 날아오르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길 위에서 산책하다가 한 비석을 만났고, 이 글귀를 보는 순간 나는 제주도의 역풍이 떠올랐다. 대붕처럼 역풍을 딛고 날아오른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섭게 마주할 것을! 나는 역풍을 몸으로 맞서기만 했다.


그리고 삼다도의 마지막. 제주도에는 길 잃은 개가 많았다. 위험천만하게 대로를 가로질러 건너다가 멈춰 서있는 개, 갓길을 따라 걷는 개. 차들이 개를 발견하고 멈춰서도, 개는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서귀포

우리는 셋째 날 쇠소깍에서 오후 4시 일정을 마쳤다. 어릴 적 노닐던 기억이 새록새록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콜밴을 타고 제주공항으로 향했고, 제주 중산간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 잠들었다.

쇠소깍 마지막 인증



파란 줄과 샛길

우리는  반 바퀴만 돌았다.

환상 자전거길을 따라서 달리는 일은 바닥의 파란  따르면 된다. 하지만 언제나 재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오지 않나.

다음번 시즌2에는  자주 샛길로 빠지면서 풍광을 눈에 담고 오자! 

더욱더 샛길로 빠져보자!

우리만의 명소뿐만 아니라 우리의 제주도 여행길을 내보자.

다른 새로운 눈으로 제주를 달려보자.

봄이 오면 시즌2를 이어가자!


여행 내내 집에 있는  자전거가 그리웠다.

너를 데리고 제주를 가면  좋으련만, 너를 싣고 해외로 가면  좋으련만.





 번외 편: 민이가 골라주는 대로 먹는 밥상

우리의 합의 2번째 항목은, 자주 멈출 것!이다. 초반에는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정했는데, 밥을 먹기 위해서가 추가됐다. 나는 미안하게도 운동을 해도 배고픔을 잘 느끼지 않아서 먹지 않아도 쑥쑥 밟아간다. 그러면 뒤에서 외침이 들려온다. “배고파!!!”  

나는 멈춰 서서 친구가 골라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다. 내달리는 나에게 밥시간을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 덕에 제주의 밥상을 삼시세끼 만끽하고 왔다. 내가 사랑한 제주 음식은 보말죽이었고. 음료는 역시 식혜다.


우리의 엔진이자 에너지원
1일 차: 13:00 김포 공항 도착-14:30 출발, 15:30 도착. 16:40 바라나시 책 골목. 18:00 자전거 출발, 20:00 게하 도착.(2시간) /흑돼지, 귤

2일 차: 08:10 출발- 18:00 게하 도착. (10시간) /고기국수-매운탕-회

3일 차: 09:30 출발- 16:00 쇠소깍(7시간) /물회-보말죽/ 콜밴 1시간-자전거 반납- 20:00 비행.


소요경비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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