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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an 03. 2020

시작은 바라나시 책 골목에서

제주 환상 종주, 제주반바퀴 시즌1을 시작하며

곁에 있는 소중함을 찾아서

내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찾았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많은 것을 찾아 멀리 떠나 보았지만 결국 소중한 건 곁에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노랫말이다. 한 때, 새로움을 처음에서만 발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국내여행은 진부하고 가지 못한 해외여행만이 새로웠다. 내게는 새로운 이 없었고, 그래서 환경을 새롭게 바꿔줄 수밖에 없었다. 눈은 중요하다. 같은 공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다각도의 관점. 보지 못하던 관점을 발견할 줄 아는 그런 능력. 그런 것 없이는 계속해서 여기저기 이국적인 곳만을 찾으며 돌아다니고, 환경을 새롭게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유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서양과 동양을 이분법으로 보던 시기가 있었고 그런 곳을 다녔다. 자라면서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그리스 로마 문명이 우월적인 위치에서 날 내려다보았고 그에 따른 선형적인 순위를 매기며 살았다. 우월함을 밖에 두고 찾다 보니 당연히 내가 머무는 곳에는 0순위 대신 0점을 줄 수밖에. 회색지대라고 여겼던 캄보디아, 카자흐스탄에서 문명을 발견하고, 유라시아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점점 시선의 방향을 내가 사는 이 곳, 한국으로 돌려왔다.


제주도를 방문한 지 10여 년이 넘었다. 아마 내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제주도에 환상 자전거길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제주도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을 가겠다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튀어올랐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따뜻한 5월, 제주 환상 자전거길 종주에 나서볼까, 그런 마음이 들었고 친구와 함께 떠났다.



1. 제주도에 가기 싫은 마음은  일까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물가도 비싸고, 관광객들이 많으며 특히 중국인이 많고, 중국자본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 예전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 자연 대신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 달 살기를 하는 곳.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나는 그 말에 한동안 제주를 선택지에 올리지 않았다. 제주가 서울의 꾸며진 경리단길의 아류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서울과 다를 것이 없으리란 확신이 서렸다.


그런데 내가 본 제주는 단편적으로 편집된 모습(single story)이었다. SNS나 인터넷에서 그런 제주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떠도는, 누군가가 편집한 제주만 그리고 넘겨짚었다. 그런데 자전거라면?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자전거만 탄다면, 어떨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같은 곳을 둘러보아도 자전거로 여행하는 맛은 또 다르다는 걸,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다는 걸.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시속 10km의 세상은 다르다. 언제 어디서나 멋있는 풍광에서 멈춰 서서 쉬어가도 되는 온전한 내 속도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행이다.




2. 바라나시 책 골목


제주도로 향하고 싶은 마음에는 하나가 더 있다. 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올린 한 북카페가 있었다. 내게 먼저 입고 문의를 해주는 책방이나 북카페 주인장이 직접 선택한 곳은 되도록이면 방문해보려고 한다. 어떤 분위기인지, 왜 구매하시게 됐는지, 특히 그 당시에는 책 낸 지 1달이 조금 지났을 시기라서 더욱 그런 마음이 컸다. 자전거와 책, 두 가지 이유라면 제주도로 떠날 이유는 충분했다.


같이 자전거 여행할 친구는 중국에서 학회를 마치고 바로 제주로 넘어오느라 친구가 제주에 도착하려면 이미 저녁이다. 나는 친구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제주에 도착했다. 바라나시 책 골목으로 가는 길에 자전거 여권(국토종주 인증 도장을 찍는 여권) 구매했다. 바라나시 책 골목은 용두암에 위치해 있는데, 택시가 가까운 거리를 태워주지 않아서 계속 걸었다. 그 길에서, 햇볕이 따스하게 정수리에 내리쬐던 온도가 기억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왼쪽 뺨에 햇빛이 내려앉아서 그럴 수도 있다. 다행히 공항 외곽도로를 지나서 버스를 탔고, 내려서 지도를 보지 않고 바다로 향했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는 일이 무료하다.


바라나시, 왜 바라나시 일까, 알지 못한 채, 북카페를 찾아 나선다. 목적지 근처인 것 같은데도 보이지 않는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보고, 아니 여기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생각해보며 제주공항에 날아드는 비행기를 좀 감상하다가, 더움을 식히는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얼굴 마사지를 하다가, 다시 또 되돌아온다.  그렇게 횟집과 횟집 사이 간이문만 있고 안으로 쑥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바라나시 책 골목을 발견했다. 주토피아에서 작은 동물들만 지나다닐 수 있도록 기차 밑에 설치된 아주 낮은 문처럼.


바라나시 책골목의 대문은 아마, 저 쥐가 드나드는 문 같았다


미지의 세계, 오묘한 곳. 낯설다.

이 대문을 들어서도 될까?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생소한 느낌의 공간. 대문을 건너서 북카페 안으로 얼굴만 살짝 넣은 채로 주인장이 있나 살펴보는데 사람이 없다. 딱 한 명이 등받이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쭈뼛쭈뼛. 주인장은 설거지 중이었고, 맘 편히 앉아계시라는 말에 한 곳에 앉았고, 이상했다. 의자가 없고 두 다리를 뻗고 눕는 곳이라 부자연스럽지만 나도 그래 봤다. 그때 5월에는 유라시아 견문 1, 2, 3 편을 중점적으로 읽고 있었다. 그중 2권이 이곳 바라나시처럼 굉장히 낯설었는데, 대부분의 인도 관련 내용이었다. 다행히 그 책을 읽었기에 인도에 현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됐고, 주인장에게 인도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 부탁하고 짜이를 시켜봤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면 먼저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짜이를 시키니 이런 문구를 함께 준다.  몇 달이 흐른 뒤에, 접어두었던 글귀를 발견하고는, 주인장에게 연락해서 어떤 책에 나온 문구인지 물었다. 라하나 마리하쉬가 쓴,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게는 심오한 책이었다. 물어도 물어도 모르겠는 질문이자 평생을 묻고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가. 과학적으로 답하면 우리는 그저 별이 생성한 물질들의 결합일 뿐이다. 그래도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곳을 기억하기 위해, 알록달록한 인도 연필을 사왔다. 지금도 책 읽을 때 잘 사용하고 있다. 책은 여전히 다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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