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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19. 2023

고향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구수한 닭냄새가 풍겨난다.

엄마의 삶 6

우리 엄마는 닭을 정말 좋아한다. 그저 좋아한다라고만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 일주일에 매끼 닭으로만 먹으라고 하면 행복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그저 그런 날에도 치킨이나 백숙을 찾을 만큼 엄마에겐 닭이 힐링 포인트다. 물론 삐진 엄마를 달래는 치트키 역시 치킨! 뚱한 엄마에게 슬쩍 치킨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건 우리만의 화해 모션이다.


엄마의 유별난 닭사랑은 어릴 때부터였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된 엄마는 인천의 선인재단으로 유학을 갔었다고 한다. 충주의 작은 시골보단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길 바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바람이었다고 한다. 셋째 이모의 하숙집에서 같이 살던 엄마는 가끔 고향집으로 가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부터 구수한 닭냄새가 퍼졌다고 한다.


닭볶음탕부터 백숙, 골목 저쪽에서 팔던 노릇노릇한 치킨까지 세상의 닭요리는 모두 밥상 위에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고등어라면 혼자서도 한 마리를 싹 해치우는 엄마를 위해 할아버지는 항상 고등어 한 손을 사 오셨다고. 지금보다 더 유통이 힘들 때이니, 그땐 생물이 아닌 굵은소금에 잔뜩 절여진 간고등어였는데 엄마는 말할 틈도 없이 먹었다고 한다.


수북하게 차려진 밥상에서 엄마는 고소한 백숙 한입 먹다가 칼칼한 닭볶음탕 한 숟갈, 기름진 간고등어구이 한점 들고 다시 바삭한 치킨을 입에 가져갔다고 한다. 이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엄만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할머니의 손맛을 잘 알고 있는 나도 같이 침을 삼키곤 했다. 멀리서 지내는 딸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엄마는 가끔 이 순간을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가 누런 종이봉투에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치킨 봉지를 안고 고등어 한 손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 할머니가 커다란 대접에 백숙을 담고 닭볶음탕을 내오는 모습. 밥상 가득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가득 차 있고, 잘 먹는 엄마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주 보던 그날들의 기억.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을 다시 한번 더듬으며 엄마는 아이처럼 웃었다.


엄마도 엄마가 되어보니 이런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고 했다. 엄마도 멀리 떨어져 있던 내가 가끔 올 때면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반찬을 만들었다. 고기를 좋아하니까 고기 요리, 건강도 생각해야 하니까 야채쌈, 자주 못 먹을 것 같으니까 찌개도 끓이고, 엄마는 화구 3개를 몽땅 쓰면서도 상에 놓을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 작은 캐리어가 빡빡 질 때까지 반찬과 음식을 담은 통을 욱여넣기도 했다.


엄마는 이런 아련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꿈에서라고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는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를 신으로서 모시고 있고, 꿈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때론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아주 가끔은 행복했던 날의 조각을 꿈 삼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했다. 이젠 엄마도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더 잘해줄 수 있다고.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이젠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한 밥상을 차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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