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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Apr 17. 2017

한양도성길 1코스, 북악산길

북현무에 올라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다


봄날이다. 다시 걷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봄날의 햇살을 만끽하려면, 일단 나가서 걸어야 한다. 나는 겨울 내내 미루어 왔던 한양 도성길 하이킹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옛 한양 도성의 성벽을 따라 이어진 한양 도성길은 북악산길, 낙산길, 남산길, 인왕산길 이렇게 4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첫 번째 코스는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혜화문으로 끝나는 북악산길이다. 


조선왕조 오백년의 도읍지였던 한양은 동서남북에 사대문을 두었고, 그 사이 사이에 사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정서의 돈의문, 정북의 숙정문 사이의 소문이다. 


‘의를 드러나게 하다’ 뜻의 창의문은 서울의 사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여전히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의 유산이다.



[ 북악산길의 출발, 창의문 ]



한양도성길 제1구간 북악산길의 출발은 창의문에서 시작된다. 북악산길 등반을 위해서는 창의문 탐방 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시하여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북악산길이 청와대와 인접해 있어 대통령 경호 문제로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런 까닭에 출입이 통제되어 있던 구간이다. 현재는 출입이 허용되나, 곳곳에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 곳이 많다.


북악산길의 초반 구간은 성벽을 따라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약 1시간 여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에 중간에 가다 쉬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래도 멈추어 설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이 나를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었다. 




[ 북악산길에서 바라 본 풍경 ]


특히, 성벽 너머로 저만치 보이는 북한산의 높은 산세가 정말 멋지고, 그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평창동의 마을 풍경이 평화롭다.  그렇게 인고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해발 342 미터 북악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북악산은 세종로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얀 연꽃 봉오리처럼 보인다 하여 ‘백악산’이라고 불렸다. 북현무에 해당하는 백악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좌청룡인 낙산, 서쪽의 우백호인 인왕산, 남쪽의 남주작인 남산이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어, 한양은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명당의 요건을 갖추었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겸재 정선은 백악산 근처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적부터 백악산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자란 백악산의 우아한 자태를 세세한 묘사로 ‘백악산’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나는 백악산 정상에 올라 겸재 정선이 그려냈던 ‘백악산’의 우아한 자태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 마치,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서 꾸르베가 그렸던 에트르타의 해안을 바라보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처럼 가슴 벅찬 감동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 백악산 정상 ]



내가 태어나 내가 살아온 서울.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늘 익숙했던 일상도, 사실은 언제나 특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백악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이제 능선을 따라 좀 더 편안한 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약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북악산길에서 가장 조망이 좋다는 청운대 쉼터에 이르게 된다. 


남쪽으로는 경복궁과 광화문, 북쪽으로는 북한산의 산세 높은 봉우리들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청운대 쉼터에서 내려와 조금 더 걷다 보면, 1.21 사태 소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1968년 1.21 사태 당시, 김신조 등 31인의 무장공비 일당은 청운동 근처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과 인왕산 등지로 흩어져 도주하였다. 



[ 1.21 사태 소나무 ]



당시, 치열한 교전 중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 소나무를 1.21 사태 소나무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여전히 그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당시의 치열했던 교전 상황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역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1.21 사태 소나무를 지나 성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촛대 바위가 나타난다. 촛대처럼 날카롭게 선 바위의 기세가 느껴진다. 



[ 촛대 바위 ]



다만, 아쉽게도 나뭇가지에 가려 바위의 기세를 온전히 다 느낄 수는 없었다.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이 촛대 바위 위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쇠말뚝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일제 치하의 상처가 우리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촛대 바위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이제 숙정문이 나타난다. 숙정문은 한양 도성의 사대문 중 하나로 정북향의 대문이다. 


정남향의 숭례문이 “예를 숭상한다”는 뜻인데, 이와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북악산길에서 바라 본 성북동 풍경 ]



숙정문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는 옛 한옥과 현대식 가옥이 혼재한 성북동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북악산길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다. 


그렇게 30여분 걷다 보니, 와룡공원을 지나 어느새 성북동 마을에 이르렀다. 


북악산길은 한양 도성 4개 구간 중 가장 힘든 코스이긴 하지만, 북현무에 올라 좌청룡의 낙산, 우백호의 인왕산과 남주작의 남산을 거느린 한양 도성을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코스여서 매력적이다.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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