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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n 27. 2015

서울 하늘 동네, 이화동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일까?


나는 어떤 노래가 좋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다. 그렇게 정말 좋은 노래는 수없이 반복해 들어도 절대 질리지가 않는 법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은 내게 그런 노래다.


“ 우리 두 손 마주 잡고, 걷던 서울 하늘 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 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2015년의 나는 20년 전 대학시절로 돌아가 이화동 어딘가의 골목길을 걷게 된다. 


노랫말처럼, 이화동은 아직 그대로일까?


나는 1995년에 안암동에 있는 대학을 다녔고, 근처 대학로가 있는 이화동에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리고, 가끔 대학로에서 이어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이화동 골목길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때의 그 이화동은 내게 그닥 특별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평범했던 기억들이 이제 아주 특별한 장면들로 되살아 나고 있다.


[ 서울 하늘 동네, 이화동 풍경 ]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뇌리 속에 되살아난 그 장면들은 당시엔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었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청춘이기에 “추억”이라는 이유로 지금 내겐 매우 특별하다.


지금 2015년의 이화동은 실제로도 20년 전 그때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동네가 되어 있다. 1995년엔 그저 서울의 어느 달동네일 뿐이었던 이화동이 특별한 동네로 재탄생하게 된 것은 2006년 12월 시작된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도심의 낙후된 소외지역을 미술의 힘을 빌려 재생시키기 위해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로 좁고 어둠침침했던 동네의 뒷골목에 재기 발랄하고,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졌고, 달동네 이화동은 이제 “이화동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2010년, KBS 인기 TV 프로그램 “1박 2일” 에 이화동 벽화마을의 “날개 벽화”가 등장하면서 이화동을 찾는 발길이 부쩍 많아지게 되었다.


요즘 이화동에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고, 잉어계단, 꽃계단처럼 이화동의 인기 명소가 되어 버린 벽화 앞에서는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한 행렬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예전부터 이 곳에 거주해 왔던 주민들에게 이화동은 관광지가 아닌, 일상의 터전일 뿐이지만, 이제 이화동은 외지인들이 급격히 점령해 가며,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라는 귀여운 팻말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밤낮으로 오고 가는 관광객들 탓에 정작 동네의 주인인 주민들은 일상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이화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하여 벽화마을의 초입인 굴다리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숨이 턱턱 차오르는 가파른 길을 올라 굴다리에 이르면, 요즘 서울에서 보기 힘든 달동네 풍경이 시작된다.


벽과 지붕은 여전히 낡고 허름했지만, 아름다운 벽화들이 죽어가는 회색 빛 시멘트에 생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그 골목들을 걷고 있으니, 나 또한 죽어 있던 고요한 마음에 잔잔한 바람이 인다.


어디선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눈 앞에 20대의 선한 옛 추억들이 흐린 영상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기억 하나 하나를 스치듯 하늘 동네, 이화동 골목길을 걸었다. 





잉어 두 마리가 헤엄쳐 오르는 돌계단을 올라 하늘 동네의 정상에 이르면, 2015년의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도심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 복잡한 도시 안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들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기억나지 않을 것 같던 오늘의 일상도, 먼 훗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화동처럼 시간이 흘러도 추억의 흔적들이 소멸하지 않는 동네들이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빠르게 사라지고, 새로 지어지는 도시의 발전 속에서 우린 지금의 안락함보다 더 소중한 삶의 기억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하늘 동네의 끝에서 꽃잎을 밟으며, 계단을 내려온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 여행으로 잠시 떠나 있었던 오늘의 일상으로 되돌아 온다. 오늘 나의 평범한 하루는 먼 훗날 가장 특별한 단 하나의 추억일 것이다.


“이화동” 이 세 글자에 내 마음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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