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의 완벽한 숲 속을 거닐다
한양 도성길의 세 번째 구간인 남산길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시작하여 서울 타워를 지나 숭례문까지 이어진다. 바로 직전 구간인 낙산길의 종점, 흥인지문에서부터 남산길의 기점, 국립 극장 사이의 성곽은 이미 그 흔적조차 사라진 채 소실되었고, 그 자리엔 오랫동안 쌓여 온 도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남산길은 한양도성길 4개의 구간 중 가장 잘 정비되어 있다. 도심에 자리 잡은 탓에 주말이면, 삼삼오오 산책하러 나온 시민들로 붐빈다. 게다가 정상 근처의 서울 타워에는 일년 내내 관광객들과 서울 시민들로 붐빈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남산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한양도성 순성길’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타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성곽길 보수 공사로 옛 성곽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아스팔트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었는데, 최근에 보수 공사를 마치면서 옛 성곽을 따라 등산로가 개방되었다.
게다가 이 코스는 한 동안 사람들의 흔적이 없었던 탓에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다. 걷는 내내 각양각색의 새소리가 끊이질 않고, 다양한 종의 식물들과 만나게 된다.
성곽길의 초반 코스는 생각보다 가팔랐다. 초입부터 거의 남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계단과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 이어진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성곽 너머로 고개를 내민 고목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으로부터 푸른 잎새의 재잘거림과 산새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여기가 과연 서울 한 복판, 남산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이 곳은 완벽한 숲 속이었다.
그렇게 봄의 싱그러움과 자연의 숨소리와 향기로운 꽃 내음 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서울 타워가 크게 다가와 있다. 그리고, 한양 도성의 옛 성곽은 남산 타워까지 줄곧 이어져 있었다.
예전의 모습과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는 서울 타워의 전망대에 앉아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남산 케이블카를 타며 신기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서울도 몰라보게 달라졌고, 나는 그보다 더 많이 달라져있었다.
저만치 한강이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을 보니, 나의 세월도 흘러가는 것 같아 잠시 서글퍼진다.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강물처럼 세월은 참 빠르다.
찰나의 순간이다. 짧다는 것, 슬픈 일이다. 짧기 때문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하다. 우리의 인생, 한 순간도 짧다고 낭비할 순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잠시 정상에 서서 나는 사색했다. 그리고, 우리 인생처럼, 나는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서울 타워에서 내려가는 길목에 옛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밤에는 봉화, 낮에는 연기를 피워,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도성에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옛 통신 수단이다.
봉수대는 전국에 620여 개소가 있었으며, 목멱산, 지금의 남산 봉수대가 전국에 흩어진 봉수대의 최종 목적지였다고 한다.
봉수대를 지나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내려오는 길에 서울 시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명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밤에는 야경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올라오는 길에 비하여 내려오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힘들게 올라와 보니, 내려가는 길은 너무 쉽게 순식간이어서 허탈한 그 느낌.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딱 후딱 내려와 보니, 어느새 남산 공원을 지나 숭례문에 이르렀다.
(글/사진) Trip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