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 포르투
우리는 사전에 준비된 일정표가 없었다. 아니, 포르투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긴 하지만, 유럽의 다른 대도시와 비교하면, 그닥 크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부지런히 하루나 이틀 정도 걷다보면, 도시의 주요 명소를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아담했다. 어쩌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면 충분했을 여정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를 가장 멋지게 즐기는 방법은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이 도시의 구석 구석을 누비는 것이다.
포르투를 여행할 때는 꼼꼼하게 짜여진 일정표나 깨알 같은 여행 정보보다는 튼튼한 두 다리와 약간의 감성적인 느낌, 그리고 여행자의 자유로운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난 조금 여유로운 일정으로 3박 4일이나 포르투에 머물기로 했다.
처음 유럽 여행을 시작할 땐, 정해진 일정 동안 한 군데라도 더 보기 위해 빈틈없이 짜여진 일정표를 가지고 바쁘게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사실, 사전에 여행 준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여행을 하기도 전에 미리 다 보게 되는 단점도 있다. 그러다보면, 여행은 단지 사진이나 글로 보았던 것을 확인하기 위한 요식 행위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너무 철저한 여행 준비는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어야 하고, 낯선 것들이 하나 둘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속에 떠나야 할 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된다. 일정표에 정해진 여정보다 하루 이틀 더 머물게 되는 순간, 우린 진정한 여행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포르투에선 지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걷고, 또 걷기만 해도 그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장면들이 하나 하나 충분히 아름다웠다. 굳이 목적지가 없어도 좋았기에 우린 숙소를 나와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발걸음이 이끄는대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도루강변에 이르게 된다.
미리 예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포르투 여정은 그렇게 도루강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포르투의 상징인 "동 루이스 1세 다리"였다.
포르투의 중심부와 강 건너편 "빌라 노바 데 가이아"를 연결하고 있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1886년, 테오필 세이리그라는 사람이 설계하여 지어졌는데, 그는 파리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프 에펠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이 거대한 다리는 에펠탑처럼 철골 구조로 지어졌다. 마치 에펠탑을 옆으로 뉘어 놓은 것처럼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모양은 에펠탑을 닮아 있었다.
도루강변에서 바라보는 "동 루이스 1세 다리", 빈티지 느낌의 와이너리가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강 건너편 "빌라 노바 데 가이아"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도루강의 푸른 물줄기. 아름다운 포르투의 한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도루강변에는 늘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그렇듯, 기념품 상점과 분위기 좋은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이 빠지지 않고, 늘 있다. 도루강변의 카페나 레스토랑은 어느 곳 하나 멋지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하층부 입구에 위치한 카페는 정말 멋지다.
이 곳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도루강과 "빌라 노바 데 가이아"가 있는 도루강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이 빠지게 된다.
' 아, 이 아름다운 포르투, 난 왜 이제야 오게 되었을까? '
'공부는 코임브라에서 하고, 돈은 리스본에서 벌어서, 살기는 포르투에서 산다'는 포르투갈의 격언이 있다더니, 포르투는 정말 살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다.
나는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멋진 카페에 앉아 나의 소중한 시간과 함께 여행의 피곤함도, 인생살이의 고민도, 저만치 흘러가는 도루강의 강물에 함께 흘려 보내고 있었다. 이 곳에서만큼은 어떤 고민도 다 흘려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카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나서, 트램을 타고 다리의 상층부로 올라가 보았다. 트램은 홍콩의 피크트램처럼 가파른 경사로를 힘겹지만, 빠르게 기어 오르며, 포르투의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언덕 위에 다다를수록 점점 더 넓고 멋진 포르투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좀전까지 카페에 앉아 다 보았던 풍경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포르투의 매력은 정말 끝도 없었다. 트램에서의 짧았던 5분, 찰나와 같았던 그 순간 순간의 멋진 장면들이 나의 가슴속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겠구나' 라고
포르투를 떠나고 나면, 난 또 다시 그리움의 열병으로 몇 년의 시간을 더 기다리겠지. 그리고, 그리움이 깊어 애타는 목마름으로 포르투가 그리워질 때, 다시 한 번 이 곳을 찾게 되겠지. 7년 만에 다시 찾아 온 포르투갈은 그렇게 또 한 번 나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 쯤, 나는 트램에서 내려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상층부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도 포르투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포르투 여행자라면, 반드시 걸어서 건너 보아야 한다는 "동 루이스 1세 다리"
다리의 중앙 차선에는 열차가 다니고, 양 옆의 인도는 사람들이 다닌다. 엄청난 높이에, 그리고, 차가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흔들림에, 다리가 후들거리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 멋진 경험을 빼 놓고 갈 순 없었다. 나는 그렇게 동 루이스 1세 다리 위를 걸으며, 또 하나의 특별한 기억들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2013.10
Porto, Portugal
By Courbet
Instagram: Courbet_Gallery
Naver blog: 낯선 서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