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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평 Jan 26. 2020

아는 빈티지잔도 두들겨보자

크랙, 크래이징, 칩, 리페어. 이게 다 무슨 소리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최남단의 좁아터진 곳간에서 그간 모은 빈티지잔들과 옥신각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브런치 계정을 열기까지 반년, 열고나서 반년,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다음부터 또 반년이 흘렀습니다. 이러다가 칠순잔치를 할 때까지 고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겨울비가 우두두 떨어지는 곳간에 우두커니 앉아 첫 칼럼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실은 십여 가지의 목차와 개요를 미리 적어두고 내내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빈티지잔 구입가이드'부터 적자니 제주도 일주도로를 하루만에 드라이브해야 할 것처럼 벅찬 느낌이었고, '빈티지잔 감정방법'을 이야기하자니 쿨피스없이 매운 떡볶이를 먹어야 할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몇몇 분이 요청하신(과연 몇몇 분일까...한두 분은 아니었을까) '진/가품 판별법'은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꺼내기엔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빈티지잔을 모으기 시작했을 무렵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보기에는 어쩐지 쑥스러웠던 내용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기본적으로 알아두고 구입시 고려해야 할 '결점 체크'입니다. 그릇은 강철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지(damage)를 입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빈티지/앤틱잔 수집시 크게 따져봐야 할 데미지는 '크래이징(crazing), 칩(chip), 크랙(crack), 리페어(repair), 변색(discoloration)'입니다.


국내에서 많은 분들이 모으시는 빈티지잔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생산, 아무리 생산년도를 거슬러 올라가도 1920년대 이전의 패턴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컬렉팅에서는 생산 후 100년이 넘은 것을 앤틱(antique), 그 이전의 파릇파릇한 것은 빈티지(vintage)로 구분합니다. 그러니 실제로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잔은 앤틱잔이 아닌, 빈티지잔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데미지로도 가치가 하락(devalued)되지 않는 아이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매우 짧은 시기에 극소량만 생산된 아이템 중에서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1800년대에 생산되었지만 온전한 상태로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는 웨지우드 재스퍼 베이스는 옥션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뭅니다. 두동강이 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한 크랙이나 칩은 뒷전이고 입찰하기에 바쁜 분위기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1)나이를 많이 먹었고, 2)생산량이 적고, 3)생산시기도 짧은데, 4)최상의 컨디션(pristine condition)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템은 소장할수록 매년 그 가치가 배가됩니다. 그러니 빈티지만 염두에 두지 않고 그 범위를 앤틱까지 넓힌다면 그저 실사용, 개인수집용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고, 혹시 모를 재판매의 경우를 생각해 가치상승 기대치를 잘 따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자면 평가대상인 아이템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알아야겠지요. 방법을 글 한 편으로 알려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하지만 세세한 요소들을 깊이있게 이해한 다음, 이쑤시개처럼 자잘한 내용들을 한통에 담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영미권, 유럽에서 '앤틱감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분들은 일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하다고들 말합니다. 우리는(아니 저는) 시간이 많고, 지면은 여유로울테니 느긋하게 하나씩 알아가봅시다.


크래이징(crazing), 많이 들어보셨지요. 두께감있는 북유럽잔보다는 본차이나에서 더 높은 빈도로 발견되는 데미지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릇의 유약이나 표면층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증상을 가리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유약처리된 표면층과 그 하부 재질의 수축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니까 뭔가 그럴듯하고 복잡해보이는데, 펄펄 끓는 물에 계란을 집어넣었을 때 흰자가 터지면서 껍질이 깨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물론 유약처리된 표면이 계란껍질처럼 박살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원리는 유사합니다.  

보관장소의 온도가 급격하게 변할 때에도 크래이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락방이나 지하실은 빈티지/앤틱잔을 보관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닙니다. 쉽게 추워지거나, 쉽게 뜨거워지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치못할 경우라면 냉방/온풍시설로 온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레어 아이템의 경우, 크래이징 정도는 데미지로 보지 않기도 합니다.


실사용을 주목적으로 빈티지잔을 구입하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크래이징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진 틈에 홍차나 커피가 계속 닿게 되면 변색이 되면서 데미지는 점점 심해지니까요.

 

이게 칩(chip)입니다. 우리나라말로는 '이가 나간겨'. 칩이 생긴 잔은 'chipped cup'이라고 하지요. 대부분 강한 충격 때문에 생기는 데미지입니다. 잔이나 그릇 테두리에 생기는 칩은 '림칩(rim chip)', 하단에 생기는 칩은 '베이스칩(base chip)'입니다.


사진으로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칩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육안으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판별해야 할 경우, 혹은 미세한 칩을 잡아내야 한다면 눈을 감은 채 집게손가락으로 표면을 살살 쓸어보는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경력이 오랜 딜러나 컬렉터들이 '숨어있는 칩'을 찾아낼 때 많이들 쓰는 방법입니다.


잔, 소서, 피겨린 같은 피스의 하단면은 옮길 때마다 충격을 받기 때문에 베이스칩이 생기기 쉽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베이스칩은 림칩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데미지이나, 그렇더라도 칩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리페어(repair), 데미지를 수선한 경우입니다. 잔은 손잡이 파손이 가장 잦고, 대형 화병은 부조나 손잡이 파손, 팟은 손잡이나 부리(spout) 파손이 대부분입니다. 드물지만 솜씨좋은 수리 전문가가 손댄 피스는 새로운 생명을 얻고 가치가 올라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눈속임을 위해, 혹은 임시방편으로 엉성하게 수리하는 경우가 많아 리페어된 피스는 가치가 하락합니다.


고가의 앤틱/빈티지잔을 구입하게 되었다면 어두운 곳에 가서 자외선램프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열쇠고리에 달 수 있는 자외선램프를 사용했었는데 술마시고 열쇠고리를 통째로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사야합니다. 리페어에 사용되는 접착제는 자외선에 비춰봤을 때 형광색을 내뿜습니다.


나중에 따로 다룰 내용이지만, 그릇수리에 관심이 있다면 '킨츠키(kintsugi)'에 대해 알아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유용한 힌트니까 한번 찾아보세요.

 

가장 악랄한 데미지, 크랙(crack)입니다. 사진예시로 든 크랙은 한눈에 봐도 크랙입니다만, 꼼꼼히 살펴봐도 보일까말까 싶은 크랙이 많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컬러가 들어간 잔이라면 육안으로 크랙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크랙이 생긴 피스는 실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한번 생긴 크랙은 멈추지않고 조금씩 번져나가기 쉽습니다. 간혹 인터넷에서 찾은 팁을 꺼내시며 '우유 끓인 물에 금간 잔을 담그면 감쪽같다는데, 정말인가요?'라고 물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답을 드리자면 정말이지만, 정말은 아닙니다. 우유의 단백질인 카제인 성분이 벌어진 틈 사이에 들어가 응고되면서 크랙을 메꾸는 것이 그 원리입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자면 카제인의 접착력으로는 잔의 재질을 단단하게 붙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크랙 생긴 피스는 장식용으로 사용하시거나, 제대로 된 그릇용 접착제를 써서 수리해야 합니다.


동영상은 크랙을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작든 크든, 크랙이 생긴 피스를 두들기면 소리가 제대로 공명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피스를 두들겼을 때, 그리고 크랙있는 피스를 두들겼을 때의 소리차이를 들어보세요. 둔탁한 소리가 난다면 어딘가에 크랙 데미지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세요.


익숙하지 않다면 두들겼을 때의 소리가 정상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같은 패턴의 온전한 다른 잔을 옆에 두고 나란히 두들겨보면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단, 검증이 필요한 잔은 평면 위에 놓아야 합니다.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서는 백번 두들겨봐야 소리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변색(discoloration)입니다. 말그대로 이해가능한, 판별도 쉬운 데미지입니다. 복원이 불가능한 변색이 가장 문제겠지요. 변색이 생기는 원인도 여러가지인데, 대개는 관리소홀, 부적절한 사용입니다. 변색 역시 크래이징처럼,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데미지입니다.



첫 글인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길어졌습니다. 날짜를 정해두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는 못하겠지만, 적어둔 목차가 아까워서라도 짬을 내어 글을 풀어나가겠습니다. 칼럼에서 다뤘으면 싶은 주제가 있다면 제보주셔도 됩니다. 제 능력이 허락하는 선이라면 (언젠가는) 여기서 다룰 수 있겠지요. 좋은 잔,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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