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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평 Mar 02. 2020

이름이 뭐예요? 몇 살이에요?

빈티지잔, 너의 정체를 알려줘

수집생활 20년차에 이르다보면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잔, 보신 적 있으세요?"

"이거 혹시 얼마나 된 걸까요?"

"이건 어떤 브랜드인가요?"


가장 정확한 대답은 바로 손안에 있습니다. 잔, 또는 소서(받침)를 손에 쥐고 뒤집어봅시다. 백마크(backmark), 혹은 백스탬프(backstamp)라고 하는 표식은 앤틱/빈티지 그릇의 나이, 진/가품을 판별할 수 있는 쉽고도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중적인 브랜드의 나이를 가늠하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인터넷이 흥하기 전, 골동품 감별사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바이블은 바로 백스탬프 백과사전입니다. 이런 식으로 두껍고 지루하게 생긴 책입니다.



...지루하죠.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인터넷이 있습니다. 검색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나오는 세상입니다. 궁금한 브랜드가 있다면 구글에 검색하면 나옵니다. (예: wedgwood + backstamp)


이베이의 제품설명을 참고하는 경우도 자주 보았습니다. 이베이 같은 경매사이트는 추후에 따로 다루겠지만 그야말로 양날의 검입니다. 정보의 양은 풍성하지만 질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문적인 셀러들은 어지간한 감정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에 신뢰할 만하지만, 문제는 어설픈 지식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식의 설명이 많습니다. 제 경우에는 아무리 뒤져도 정보를 찾을 수 없을 때, 지푸라기가 될 만한 자투리 정보라도 필요할 때에만 경매 사이트를 참고합니다. 잡은 지푸라기가 썩은 건지, 검증도 하고요.


다음은 국내에서 인지도있는 포슬린 브랜드의 백스탬프입니다. 구글링하면 다 나오는 것들이지만 번거로우니까 첨부합니다.

[아라비아핀란드 - 이 녀석만 왜 가운데 정렬 안되는 겁니까.jpg]
[앤슬리]
[벨릭]
[피기오]
[민튼]
[로얄알버트]
[로얄코펜하겐 1]
[로앨코펜하겐 2]
[로얄덜튼]
[웨지우드]
[foley]
[민튼 1]
[민튼 2]

도표로만 보면 감이 잘 안 잡힙니다. 예시 몇 개를 들어볼까요. 선반에 있던 폴리 앤틱잔 하나를 집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영국 옥션에서 낙찰받은 트리오입니다. 흔치않은 색감과 절제된 패턴 덕분에 오래도록 제 곁을 지키는 중입니다. 앞서 보여드린 백마크 히스토리에서 같은 모양을 찾아보니 1905년 무렵이라고 나옵니다.


로얄코펜하겐은 표 1,2번을 보여드렸습니다. 뒷면 알파벳 중 선이 그어진 글자를 찾아보세요. 사진 속에서는 H 아래의 선을 볼 수 있습니다. 1967년생입니다. 알파벳 상단, 하단 중 어느 부분에 선이 있느냐에 따라서 봐야 할 표가 달라집니다. 집에 있는 코펜하겐 그릇을 꺼내 연습해보세요.


크래이징이 자글자글하지만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민튼의 앤틱 티팟입니다. 간혹 도표를 보더라도 100% 같은 모양의 백스탬프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더라도 백스탬프에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 그리고 진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하는 메인 바디는 있습니다. 민튼, 웨지우드, 로얄덜튼 등, 거의 모든 브랜드의 로고는 조금씩 변형될 수 있습니다.


민튼 역시 'Haddon Hall' 처럼 스테디한 패턴의 경우에는 아예 로고 사이에 여백을 주어 패턴명을 새기기도 합니다. 표에 있는 백스탬프와 조금 다른 모양이라고 해서 가품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는 분도 계십니다. 어디서든 백스탬프를 먼저 확인하고 기억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느 부분에서 변형이 되었는지, 나중에는 그야말로 '척보면 알게' 됩니다. 이 티팟은 18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50년 되었지요. 애지중지할 만합니다.


웨지우드, 민튼, 스포드처럼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 중에는 백스탬프의 변화 역시 찬란해서, 책 한 권 분량으로 출간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찾아볼 정도의 백스탬프라면 제법 오래된 앤틱이니, 어지간한 빈티지 아이템의 백스탬프는 인터넷 서핑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길게 풀어썼지만 요약하자면, 나이 알아내는 방법은 1. 백스탬프 확인 -> 2. 백스탬프 히스토리 검색(인터넷/도서)입니다. 그릇의 이름(패턴) 찾기에 유용한 사이트도 풀어봅니다. 즐겨찾기 해두시면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이 될 것 없는 사이트들입니다.


1. https://www.kovels.com

골동품 감별 분야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코벨스 부부의 사이트입니다. 해마다 수집할 만한 골동품 리스트, 품목별 가치 급락 평가를 모은 '코벨스'는 감정업계에서 필독서로 손꼽히는 참고서 같은 책입니다. 아마존에서 'kovels'로 검색하면 2020, 2019, 2018... 년도별 코벨스 콜렉터블 가이드 도서가 나옵니다. 한권만 집어서 후루룩 훑어보셔도 가치가 급증하는 아이템이 어떤 것들인지, 대강의 감이 잡힙니다. 가급적 최신년도의 책을 골라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치에도 트렌드가 반영되니까요.




2. https://www.replacements.com/


빈티지/앤틱 수집가, 셀러, 애호가 사이에서는 바이블 같은 사이트입니다. 오프라인샵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데 온라인샵이 굉장히 유명합니다. 브랜드별 패턴, 나이를 폭넓게 정리해둬서 자주 참고하는 편입니다. 워낙 자료가 방대한 탓에 간혹 오류도 있지만 피드백도, 수정도 신속합니다.


3. https://www.chinasearch.co.uk/


영국 사이트라 확실히 영국 브랜드(민튼, 웨지우드, 로얄크라운더비, etc.) 정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리플레이스먼츠보다 자료의 양은 적은 편이지만, 영국 관련 브랜드의 자료 정확도는 좀 더 높은 듯하니 동시에 참고하기에 좋습니다.


4. https://www.classicreplacements.com/

실시간으로 구매가능한 아이템 안내가 잘 되어있어서 감정사보다는 셀러들에게 더 인기가 좋은 사이트입니다. 패턴별로 최근 단가를 확인할 때에 유용합니다.


가지고 있는 그릇의 나이와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감정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입니다. 당연히 나이가 많을수록, 컨디션이 좋을수록, 그리고 레어할수록 그릇의 몸값은 높고 앞으로도 높아지겠지요. 소장용으로 오래도록 간직할 생각이든, 얼마간 보관하다가 적정시기에 다시 판매할 생각이든,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릇 헌팅을 다니던 시기, 외국에서는 흔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광경이 있었습니다. 놀러간 친구들의 집 캐비넷에는 1900대 초반에 만들어진 귀한 웨지우드 화병, 50~70년대의 것으로 보이는 레어한 밀크글라스 그릇이나 민튼 접시들이 차곡차곡, 혹은 무심한듯 포개진 채 들어차 있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의 접시잖아! 아니 이 컨디션은 대체 뭐지, 민트급이잖아, 크래이징도 거의 없어! 왜 이런 게 너네 집구석에 있는 거야?!"

"응? 아, 그거 우리 할머니가 엄마한테, 엄마가 나한테 물려줬어. 비싼거야?"


옥션에 나오면 장당 가격이 40~50만원을 호가할 법한 민튼의 복숭아색 앤틱 접시를 보고 입틀막한 저에게, 친구는 순순히 한 장 정도 내어줄 것처럼 심플하게 대꾸했습니다. 대강의 가격을 들은 친구의 반응이 더 놀라웠습니다. "와, 그럼 나도 잘 가지고 있다가 물려줘야겠네!”(아니왜당장안팔아)


최근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혼수품 중 '그릇세트'는 필수품목이었습니다. 어느 신혼집에 가더라도 식물 패턴의 밥공기, 옥빛 색깔의 도자기 그릇이 찬장에 가득 들어찬 것은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었습니다.


빈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릇장 역시 많이 변했습니다. 자식들 결혼 날짜를 잡자마자 고가의 그릇세트부터 대뜸 마련하던 부모들은 줄었습니다. 대신 낡지만 아름답고 취향이 분명한 자기만의 그릇을 하나둘 모으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20년 쯤 뒤에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행남사 그릇을 자식에게 선물로 주거나, 본인이 쓰던 빈티지 코렐 그릇을 상자에 곱게 담아주는 사람도 있을테지요.


무조건 고가의 새 그릇을 선호하던 풍토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는 백번 반색합니다. 빈티지에 대한 탐구열이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에도 한시간 정도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4~5년 전쯤 부터 가지고 있는 그릇의 정보를 묻는 분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몇 년 전, 쉘리의 퀸앤(Queen anne) 셰이프 잔 사진 한 장과 함께 '이 그릇 정보 좀 알 수 있을까요'라는 요지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잔인데 귀한 것 같으니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어른이 될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 하셨습니다.

[1900년대 Wileman 트리오(개인소장품)]


그릇 자체의 가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월이라는 프리미엄, 품고 있던 사람의 애정이 한데 합쳐진 빈티지 그릇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세상 어디서도 '바로 그 그릇'과 똑같은 것은 구할 수 없으니까요. 아끼는 잔 두 세개를 얹어둔 소박한 선반, 하나둘 모으다가 어느덧 한 가족이 된 것 같은 잔들을 모아둔 장식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가장 소중한 이에게 주고 싶은 잔은 어떤 것일까요? 이름과 나이를 안다면 고르기는 한결 쉬워지겠지요. 저도 ‘노년의 나 자신’에게 어떤 잔 하나를 물려줄지, 내내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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