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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Feb 26. 2018

만두는 언제 먹을 수 있는 건데요

다시 겨울. 야심 차게 내놓은 메뉴는 만두.


어릴 때 이북이 고향이신 할아버지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음식은 냉면과 만두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냉면과 만두를 자주 먹었고, 즐기기도 했다. 명절이면 친척들과 몇 날 며칠 만두를 구워 먹고 쪄 먹고 국으로도 끓여 먹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우리 가족은 지금도 만두와 냉면을 즐긴다.


"네, 호호아줌맙니다."

"만둣국 예약하고 싶은데요."

"죄송하지만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요."

"먹고 싶은데... 그럼 언제 먹을 수 있는데요?"

"주말에 만두 속 만들면 다음 주에 드실 수 있어요."


만두가 생각만큼 반응이 없어 만두 속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찬바람이 나니 만두를 찾는 손님이 종종 있다. 사실 아이들 방학 시즌이라 도시락이다, 급식 대행이다 점심 배달을 많이 하다 보니 만두를 잊고 말았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만두가 나가는지 마는지 체크할 틈도 없었다.


"이번 주에 급식 끝나면 만두 속 만들어야겠어."

"있을 땐 안 찾더니 없으니까 찾네."

"사실 메뉴의 주재료가 떨어지는 건 장사를 안 하겠다는 거지."


만두를 찾는 손님에게 미안한 마음 반, 싫은 소리를 듣기 싫은 마음 반을 섞어 엄마에게 날카롭게 굴었다. 하도 당해서 그런지 엄마는 별 반응 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 옛날 같았으면 한 열 마디는 들었을 텐데 이젠 포기한 모양이다.


"네, 호호아줌맙니다."

"오늘은 만두전골 먹을 수 있나요?"

"만두전골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만두는 도대체 언제 먹을 수 있는 건가요?(매우 흥분하심.)"

"잠시만요."


월요일이다. 지난주에 애타게 만두를 찾던 손님이 아침 아홉 시에 칼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에게 손님이 울 것 같다고, 만두전골 언제 되냐고 물었더니, 만두전골은 어렵고 만둣국은 가능하다는 답이 온다.


"저... 만둣국은 가능한데요."

"정말요?? 그럼 만둣국 네 개 예약해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따 갈게요."


휴, 전화로 싸다구 맞긴 처음이다. 서둘러 만두 속을 꺼내 만두를 빚었다. 동그란 만두 피에 김치가 듬뿍 들어간 속을 꽉 채워 올리고 피 가장자리에 달걀흰자를 발라 빚는다. 오늘은 만두를 빚을 수 있어 다행이다. 나도 만두 참 좋아하는데. 매일 만두를 빚다 보니 그 냄새가 싫어 올해는 만두를 한 번도 먹지 않았구나 싶었다.


"엄마, 우리도 아침으로 만두 먹을까?"

"너 메뉴에 있는 건 안 먹잖아."

"어쩐지 먹고 싶네. 옛날엔 세 끼 다 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러게. 세 끼만 먹었어? 돌아다니면서 부엌에 갈 때마다 집어먹었지."


나도 만두가 먹고 싶어 애가 타던 시절이 있었지. 아빠는 중동으로, 동생은 일본으로 가고 엄마와 나만 명절을 보내던 때엔 만두를 먹을 일이 없었지. 열심히 만두를 빚어도 맛있게 먹을 사람이 없었으니까, 요리하는 사람도 흥이 나지 않았겠지. 뜨끈뜨끈한 할아버지 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뜨거운 만둣국을 허겁지겁 먹던 그날의 만두 맛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겠지.


만둣국에서 뜨거운 만두 하나를 건져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손님을 보다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만두 참 맛나게 드시네, 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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