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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Apr 07. 2022

우유에 소금을 조금 넣어보았다

윤여정의 할머니, 나의 할머니


문득, 기대하지 않은 어떤 순간에 누군가 떠오른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우유나 한잔 데워 마시려고 할 때, 우유에는 소금, 조금 타면 꼬숩다던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맨날 들으면서도 '에이...' 하며 말았는데 하얀 우유에 소금 한 꼬집을 털어 넣었다.


며칠 전인가, 월드릴리즈된 드라마에 캐스팅된 윤여정의 인터뷰를 보았다. 70대 중반의 노역을 맡은 그는 밤마다 자신의 외할머니께 기도한다고 했다. 덥힌 세숫물도 나눠 쓰던 자신의 어린 시절 할머니는 그 더러운 물을 제일 마지막에 쓰셨노라고. 그래서 더럽다 여겨 멸시했노라고. 이제야 너무 죄송스럽더라는 그녀의 인터뷰는 아주 사적인 것이었으나 울림을 주었다.


나이 든 다는 것은, 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이고 그 삶을 통해, 내가 만났던 제각각 다른 나이 대의 여러 사람에 대해, 점점 더...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디쯤이 반환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혈기를 다해 쫓아다니던 미로 속을 헤매다 돌아 나오니. 거기에 무겁고 두렵게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희미해진 그림자가 보인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은, 나와는 가장 멀리에 있던...  하지만 가장 어린 시절에 만났다가 잊힌.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해... 가장 나중에 와서야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했던 선명한 것들로부터, 다른 해답을 듣는 일.  소음처럼 잦아진 목소리를 가질 때, 가장 멀리에 도달하여, 꿈결처럼 아득한 사건들을 이해한다는 것... 이상한 일이다.


기대도 된다.


https://youtu.be/zvvYJKOtd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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