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알로하링 May 08. 2019

8. 한 줄 단호박 임신테스트기 [난임 일기]

우울해지다가도 피식 웃게 되는 단어 단호박 

세상 우울한 날 피식하고 웃게 되는 단어 '단호박'

단호박이라는 단어 자체는 식용으로 재배하는 호박 이름을 말한다.

단호박을 요리해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 호박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매달 임신을 기다리는 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단호박'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임신테스트기를 한 후 결과를 기다리면 약 3분-5분 후에 임신을 판가름하는 선이 생기게 되는 때 이때 한 줄만  뜬다면 '임테기가 단호박이네'라는 말이 절로 내뱉어진다. 


나는 이렇게나 우울하고 서운하고 좌절하고 있는데 단어 자체는 귀여운 단호박을 쓰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 


진짜 '얘' 단호박이네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 달에 한번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안고 임신테스트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 

썩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이번 달에도 단호박을 만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두줄이 뜨면 세상 떠날 갈 것 

처럼 행복하겠지만 혹시라도 아무 반응이 없는 단호박 같은 한 줄이 나올 경우 그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임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임테기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임테기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단호박 한 줄이 나와서 실망스러워요.' 등 수많은 글을 보며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했다. 매달 한번 사볼까? 테스트를 해볼까?라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기다려보자', '필요하면 몸이 반응해 주겠지' 등이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매달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3년 동안 나는 딱 세 번 임신테스트기를 구입했다. 

첫 번째는 결혼 직후 오랜 연애 후 결혼한 터라 아이가 빨리 생겨도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해봤지만 선명하게 한 줄이 나왔다. '역시 아직 아닐 줄 알았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며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래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 임신테스트기를 해야 하는 시기조차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서 엉뚱한 날짜에 테스트를 했었다. 


두 번째는 더욱 간절히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작년 하반기였던 것 같다. 결혼기념일도 지나고 때도 괜찮았던 것 같고 모든 게 '임신'일 것만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막연하게 '두 줄이 뜨면 어떡하지?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며 테스트기를 집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역시 '단호박'이었던 테스트기였다. 너무나도 야속한 것이 꼭 테스트 후에는 바로 그 날이 찾아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테스트 전에 반응 좀 해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명하게 한 줄만 있는 이 테스트기를 버리지 않고 다시 서랍에 넣어 두었다. 훗날 혹시라도 천사를 만난다면 그때는 과감 없이 버려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 번째는 가장 최근이었다. 정말 임신인 것 같았다. 평소 내 몸과 달랐고 예정일도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예정일이 한참 지난 후에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번엔 진짜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더 기다려볼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서랍 깊숙하게 넣어두었던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결과는 역시나 '단호박'이었다. 첫 번째는 너무나도 몰라서 두 번째는 큰 기대를 가졌지만 선명한 한 줄 그리고 세 번째는 처음으로 매직아이라는 것이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로 간절했던지라 울컥한 마음과 함께 선명한 한 줄을 보며 '단호박'이라는 내뱉었다. 화장실에 한참 앉아 우울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계속 단호박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단어인데 , 왜 이렇게 어감이 귀여운 건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단호박 이라니 - 



결혼 3년 차 총 세 번의 임신테스트기. 

나는 아직 임테기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매번 테스트기를 해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기다리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들 중 단호박스러운 임테기를 덜 보는 것이 나에게 맞다고 생각해서 정했을 뿐이다. 나는 아마도 이 신념을 꽤 오랫동안 지켜나갈 예정이다. 


이번 달은 예정일이 +3일이나 지나가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좌절감과 우울감에 휩싸였겠지만 아직 그날이 오지 않았음에도 나는 꽤 괜찮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는 그 날이 이제 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또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나는 꽤 괜찮다. 


나는 임테기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 정말로 천사가 찾아와 주면 저절로 몸이 반응해 줄 거야. 

얼른 가서 두줄을 볼 수 있도록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보라고 - 

그 날을 언제든 기다릴 수 있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빨리 와주면 좋겠노라고 - 




7년 연애 후 결혼 3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7.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울었다 [난임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