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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꾸 Dec 26. 2018

하얗고 까만 이들의 초록빛 우정

영화::그린 북(2018)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그린 북(Green Book)'은 흑인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북이다. 하지만 흑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해서 '배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 대, 흑인들을 위한 식당이나 숙박시설들을 표시하여 그들이 안전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책자에는 '백인인 우리가 지정해둔 곳을 이탈하면 흑인인 너희들에게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가 담겨 있다. 버스의 맨 뒤쪽에 마련되어 있었던 흑인 전용 좌석이나 누추하기 짝이 없던 흑인 전용 화장실처럼, 흑인 전용 여행 책자에도 피부가 까만 이들을 철저히 멸시하고 배척하고자 하는 백인들의 의도가 잔뜩 녹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영화 <그린 북>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백색과 흑색, 피부색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귀하며 또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정갈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품격 있는 유머, 흥미로운 설정, 캐릭터들의 개성, 그리고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 이 모든 것들을 정성스레 짜맞춘 작품 <그린북>의 감상평을, 영화의 제목에 담겨 있는 '그린'이라는 색깔을 통해 풀어보려고 한다. 



'그린'이 가지고 있는 '안전'의 이미지


 <그린북>의 두 주인공은 토니 발레롱가와 돈 셜리이다. 토니는 나이트 클럽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지만 클럽이 잠시 휴업을 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중 천재 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셜리 박사가 연주회 투어를 위해 운전 기사를 뽑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면접을 보러 간다. 하지만 셜리 박사는 왕좌처럼 꾸며 놓은 의자에서 토니를 내려다보며 운전뿐만 아니라 잡일까지 모두 도맡아 하라고 고압적으로 이야기한다. 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환멸해왔던 토니는 자신은 오직 운전만 할 것이며, 더 높은 주급을 달라고 역제안을 해둔 채 그의 방을 나온다. 하지만 토니의 '문제해결능력'을 높이 산 셜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함께 남부로 투어를 떠난다.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상류층은 셜리의 연주를 높이 산다. 웃음 띤 얼굴로 셜리를 대하며 그의 음악적 성취를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셜리를 경멸하여 자기 집 화장실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내적인 멸시를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로 내비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셜리의 사회적 지위를 모르는 평범한 백인들은 셜리에 대한 모멸감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셜리는 단지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저 늦은 시간에 이동했다는 이유로 백인 경찰에게 모욕을 당한다.


 피아노 선율로 사람들의 영혼을 매료시키는 위대한 음악가일지라도, 또 카네기 홀의 가장 윗층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더라도, 그를 지켜주는 듬직한 백인이 없다면 셜리는 그저 때리고 밟아도 되는 흑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셜리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토니를 고용한다. 커다란 떡대를 가지고 있고, 싸움에도 능하며, 사람을 구슬리는 재주가 있는 백인이 바로 토니였기 때문이다. 셜리는 자신의 안전을 오롯이 토니의 '문제해결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토니에게 셜리는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존재이다. 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 밤 늦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토니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셜리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자신이 딛고 서있는 땅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신에게만 안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린'이 가지고 있는 '성장'의 이미지


 함께 투어를 다닌 두 달 동안, 토니와 셜리 두 주인공은 서로를 통해 성장을 이뤄낸다. 셜리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상류층의 문화를 향유하며 살아왔지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는 서툴기만 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고상하기는 해도 온기가 담겨 있지 않아 차갑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하나뿐인 동생과도 연락이 끊기게 된다. 하지만 '떠버리'라는 별명을 가진 토니는 매사에 솔직하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매력이 있다. '성공한'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서 소외되었던 셜리는 외로움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토니와의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방법을 알게 된다.



 반면에 토니가 셜리를 통해 얻은 것은 'dignity(품위, 용기)'이다. 셜리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비교적 덜하고, 부유층이 많아 공연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북부 지역을 마다하고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투어를 다닌다. 흑인의 지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신만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고난들 속에서도 그는 'dignity'를 잃지 않는다. 자신을 멸시하는 이들에게서 절대로 웃음과 예의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양심을 지키는 것 보다는 합리화가 더 익숙했던 토니는 셜리의 투쟁을 지켜보며 진정한 품위와 용기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렇게 그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도록 내면의 성장을 일궈낸다. 



'그린'이 가지고 있는 '숲'의 이미지


 셜리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우러러보는 백인들에게 '흑인이든 백인이든 누구나 다른 이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만큼 존엄하며, 따라서 평등하게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백인들 밑에서 비참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흑인들에게는 '흑인이라고 반드시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백인들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고 호소한다. 그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화의 씨앗을 뿌려왔던 것이다. 토니 또한 셜리와 우정을 나누며 씨앗을 건네받았고, 그것을 투어에서 마주친 이들과 자신의 가족들의 마음 속에 다시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본 관객들의 마음 속에도, 조그만 나무들이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악을 없애고자 하는 '연대의 숲'이 더욱 울창해지기를 바라며, 감상평을 마친다. ⓒ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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