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MA Vo.15_2019년 10월호_주제 "당근마켓"
‘중고로운 평화나라’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 표현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중고 거래 장터 ‘중고나라’를 비꼬는 말입니다. 거래 사기, 비매너 거래자, 상업성 도배글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중고나라에 ‘평화롭다’는 반어법을 쓴 뒤, 거기에 단어의 배치까지 바꾸어 한 번 더 희화화시킨 것이죠.
이처럼 중고나라에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늘 사기에 대한 불안함과 거래자에 대한 의심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중고나라에서 거래한 물건을 받아볼 때 그 안에 벽돌이 들어있을까봐 조마조마하는 모습은 중고나라하면 떠오르는 강력한 이미지 중 하나이니까요. 하지만 1,800만 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입자수와 쏟아지는 중고매물 덕분에 중고나라는 오랜 세월 중고 거래를 책임져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고나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중고 거래 플랫폼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따뜻한 마켓’이라는 뜻의 당근마켓인데요. 중고 거래를 지역 기반의 직거래로 한정하여 사람 냄새나는 중고 거래를 만들고자 하는 당근마켓의 성장세는 매우 가파릅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이용자 수 650만 명, 월간 순 방문자 수 314만 명, 월 거래 규모는 500억원에 달했으며, 이러한 저력에 힘입어 지난 9월에는 총 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강력한 지배자인 중고나라, 그리고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다른 경쟁 업체들 사이에서 당근마켓이 유독 빛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중고나라에서 거래를 할 때에는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사기꾼이 워낙 많기도 하고, 상식 밖의 황당한 일들이 워낙 자주 일어나는 만큼 친절함보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다소 차가운 분위기의 중고나라와는 달리 당근마켓에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집 주변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끼리, 그것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당근마켓에서는 자신이 등록한 위치에서 반경 최대 6km 이내의 이용자들끼리만 거래가 가능합니다. 거래 가능 지역은 인구 밀집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네’라는 개념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거래 지역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근마켓의 이용자들은 기본적으로 직거래에 동의한 채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지나가다 마주칠 수도 있는 동네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며 거래를 한다면 사기를 치거나 몰상식한 행동을 하기가 조금 힘들어지겠죠? 게다가 주변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 가능성도 높아지니, 기존의 서비스들보다 조금 더 사람 냄새가 나는 거래 방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근마켓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거래자들 사이에 긍정적인 감정이 오갈 수 있도록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이용자들이 따뜻한 나눔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매달 ‘나눔의 날’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강원도 산불처럼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는 구호물품을 보내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나눔과 공동체라는 따뜻한 키워드를 중고 거래라는 키워드와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 서비스인 중고나라, 번개장터, 그리고 헬로마켓이 매물의 양과 종류, 편하고 빠른 거래에 집중할 때 당근마켓은 '따뜻하고 착한 거래'에 집중했고, 덕분에 고객들의 충성심과 신뢰를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고객과의 두터운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네이버가 당근마켓과 유사한 서비스를 베트남에 런칭하여 표절 논란이 불거졌을 때 고객들이 당근마켓에 대해 지지를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당근마켓이 고객과 쌓고 있는 건강한 관계는 추후에도 당근마켓의 강한 성장 동력이 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중고 거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pain point는 무엇일까요? 구매하는 사람은 그 물건이 정말 괜찮은 매물인지에 대한 걱정이 클 것이고, 판매하는 사람은 구매자가 돈을 제대로 지불해 주는 합리적인 사람인지에 대한 근심이 클 것입니다. 즉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신뢰'야말로 중고거래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겠는데요.
당근마켓은 거래자들 사이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오픈 API를 활용하여 사기 이력이 있는 이용자는 사전에 가입을 차단합니다. 이는 이용자가 사기 이력이 있는지 직접 조회해야하는 중고나라와는 차별화되는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또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용자들의 채팅 기록이나 휴대폰 인증 방식을 체크하고, 사기 거래의 조짐이 보이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기가 의심되는 사람이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더라도 대화 패턴이나 계좌번호를 인식하여 필터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신 러닝 기술로 이용자의 글, 닉네임, 사진 등을 분석하여 거래 금지 물품인 술, 담배, 동물, 농산물 등의 게시글을 지속적으로 블락 처리를 하고 있는데요. 사기 거래임이 100%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자들에게 노출되는 정도를 줄여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게시글이나 의심이 가는 사용자들은 고객들이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하여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판매자 평가 시스템인 '매너 온도'입니다. 매너온도는 거래자 사이의 거래 후기와 매너 평가, 징계 등의 내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점수인데요. 판매자의 프로필에서는 매너 온도 이외에도 재구매 희망률, 채팅 응답률, 판매했던 상품 목록, 매너 평가 항목 및 횟수, 거래 후기, 그리고 지역별 인증 횟수와 최초 가입일과 같은 데이터들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모든 사기 거래와 비매너 거래자를 완절히 근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머신러닝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자 평가 제도를 개선하는 등 불량 거래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는 모습은 고객들이 만족감과 신뢰를 느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브랜드는 과거 상점 주인들이 자신이 만든 물건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건이나 간판에 특별한 표시를 하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실력있는 제품/서비스 제공자들, 즉 브랜드력을 갖춘 이들이 그것을 어필하기 위해 브랜드를 만든 것인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곧 브랜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퍼블리(PUBLY)에서 그로스 전략 관련 자료를 무료로 공개한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당근마켓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가져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당근마켓은 노션(Notion)으로 팀 소개 페이지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노션은 요즘 스타트업 사이에서 핫한 협업툴인데요. 정보 저장 및 공유, 업무 상황 확인 등 수많은 기능들이 구현되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아직 활용법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유저들이 계속해서 사용법을 연구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근마켓은 이 노션을 활용해서 팀 소개 페이지를 멋지게 만들었고, 덕분에 테크 새비(tech savvy, 최신 기술에 적응력이 높은 사람)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근마켓은 고객을 위한 블로그와 팀 블로그를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을 위한 블로그에는 당근마켓 서비스 소개와 당근마켓 활용법, 중고거래 팁, 이벤트 등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팀 블로그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보통 친근하고 일상적인 느낌의 네이버나 티스토리가 아닌 미디움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블로그의 운영 목적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요.
팀 블로그에는 개발과 스타트업 운영과 관련된 전문성 높은 글이 주로 포스팅되고 있습니다. 전체 팀원 중 개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개발과 관련된 글이 특히 많은데요. 아래 이미지와 같이 당근마켓의 개발자들이 서비스에 적용하기 위해 실험한 내용이나 성공적인 개발 방식에 대해 옆에서 설명해주듯이 적어놓은 내용을 보면 '이 곳 개발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얼핏 보면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현재 당근마켓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은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의 입에 좋게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진다면 당근마켓의 고객은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것이고, 일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인재들이 당근마켓에 몰릴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좋은 인재들은 다시 당근마켓의 서비스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니, 결국 어느 방식으로든 당근마켓의 브랜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멋진 전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근마켓에 대해 조사하면서 '착한 마음을 가진 실력자들이 만드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중고 거래가 일상이 되는 것, 나아가 동네 주민들이 지금보다 한 뼘 더 가까워지는 것이 정말 가능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 꿈을 이루어주기를 바라며, 당근마켓에 작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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