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도 묘한 '운영의 묘'에 대하여
운영 매니저들이 '운영의 묘'를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대표님이 운영 팀원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입니다. 운영의 묘, 언뜻 알 것도 같으면서도 확 와닿지 않는 개념인데요. 특히 저 '묘'라는 단어가 말로 설명하기 참 묘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저 알쏭달쏭한 능력을 얻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그러던 중 운영의 묘라는 것이 레스토랑에서 음식 서빙을 잘하는 것과 맥락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빙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손님들에게 메뉴를 꼼꼼히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손님들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정확하게 고를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손님의 상황에 맞게 메뉴를 먼저 추천해드리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손님의 요구사항이나 불만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것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인지, 들어준다면 쉐프나 지배인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처리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손님이 음식을 먹는 동안, 혹은 먹고난 후 레스토랑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말해주면 그것을 레스토랑의 모든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개선점을 찾아봐야 합니다.
요약하면 운영의 묘는 다음의 능력들이 한데 섞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높은 이해력
고객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전달력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통찰력
적절한 서비스를 제안하는 영업력
고객의 요구나 불만사항의 수용 여부를 가늠하는 판단력
요청사항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응용력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아내는 분석력
돌이켜보니 포켓서베이라는 서비스는 운영 매니저들에게 위의 능력들을 발휘할 것을 늘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포켓서베이의 기능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고, 확장성이 굉장히 넓은 서비스인 만큼 고객들의 니즈도 정말정말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포켓서베이가 하드 트레이닝(?)을 시켜준 덕분에, 운영의 묘라는 것이 제 안에 조금씩 쌓인 것 같기도 한데요. 그 생생한 사례들을 단계별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차선책이 곧 최선책이다!
포켓서베이의 개발 방향은 '일정 수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먼저 내놓고 상황에 따라 발전시킨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구현되어 있지 않지만 언젠가 개발에 착수할 기능에 대해 고객이 '이것도 되나요?'라며 문의를 주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바로 이런 때가 운영의 묘를 발휘하기 좋은 상황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살펴볼까요?
포켓서베이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설문 문항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하나의 질문에 여러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객관식 복수 선택 문항, 즉 '모두 고르시오' 문항이 있습니다. 이 문항 유형에 대해 한 고객이 문의를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사내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인데, 사내 복지 요소 중 개선되었으면 하는 요소 top 3를 파악하고 싶다고 하셨죠.
지금이야 복수 선택 문항에서 우선 순위대로 응답하는 기능이 개발되었지만, 당시에는 이 기능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저 여러 선택지를 선택할 수만 있도록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능만 구현되어 있는 상태였죠. 고객의 요청을 받은 저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서비스의 기능적인 한계로 말씀해주신 내용은 반영이 어렵다고 고객에게 말씀드린다.
둘째, 다른 개발 일정으로 바쁜 개발팀에게 '이 기능 필요하니까 당장 개발해주세요 뿌에엥' 하고 떼쓴다.
셋째, 현재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고객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차선책'을 찾아낸다.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세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우선 고객에게 기능상의 한계로 완전히 깔끔하게 문항을 구성하는 것은 어렵다는 양해의 말씀을 전한 뒤, 차선책을 말씀드렸습니다.
왼쪽 이미지는 하나의 문항으로 3가지 선택지의 우선순위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니 오른쪽 이미지처럼 하나의 복수 선택 문항을 3개의 단일 선택 문항으로 쪼개는 방법을 제안드렸습니다. 같은 내용의 문항이 연속해서 3번 나오기 때문에 먼저 우선순위 3가지를 파악하는 문항이라는 안내 문구를 넣고, 각 문항의 끝에 1순위, 2순위, 3순위에 대한 언급을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응답자들이 해당 문항의 진행 상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1/3], [2/3], [3/3]이라고 표시도 해두었죠.
왼쪽 이미지처럼 깔끔하지는 않더라도, 설문 대상자들은 해당 문항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문의를 주셨던 담당자님도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구요. 저 또한 개발팀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제 선에서 고객의 어려움을 해결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최선책이 없을 땐 차선책이 곧 최선책이다'라는 단순한 깨달음. 이것이 바로 운영의 묘가 아닐까 싶습니다.
: 고객이 늘 실현 가능한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유명한 교육 출판사에서 포켓서베이를 이용하고 싶다며 문의를 주셨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의 학습 교재에 설문 QR코드를 삽입하여 설문조사를 진행하고자 하며, 설문 완료자에게는 리워드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하셨죠. 프로젝트 진행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담당자님께 기존에 다른 설문 도구로 진행했던 설문지의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14세 미만 응답자들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 이슈였습니다.
설문의 대상자는 크게 학생과 선생님으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리워드는 설문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주는 기본 리워드와 성실하고 의미있는 의견을 남겨준 응답자에게 주는 우수 응답 리워드로 나눠져 있었죠. 문제는 우수 응답 리워드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설문 문항에서 휴대폰 번호를 물어봐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개인정보 수집 목적과 보유기간, 그리고 그에 대한 동의를 얻으면 설문 문항으로 개인정보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4세 미만의 어린 학생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련 법령을 찾아보니, 14세 미만 아동들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위해 2019년부터 정보 수집 절차가 다소 복잡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설문 문항만으로는 전화번호를 물어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에게 포켓서베이의 리워드 캠페인 기능과 분기 설정 기능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안드렸습니다. 먼저 설문 종료 즉시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리워드를 지급할 수 있는 리워드 캠페인 기능을 이용해 기본 리워드를 제공합니다. 별도로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도 리워드를 지급할 수 있기에, 14세 미만의 학생들도 무리없이 리워드를 받아갈 수 있죠. 우수 리워드의 경우 지급 대상을 가려내기 위해 분기 설정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는데요. 설문 문항에서 14세 미만인지 여부를 물어본 뒤, 14세 이상의 응답자들에게만 리워드를 제공받을 연락처를 적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14세 미만의 학생들은 우수 응답 리워드 대상자에서 아예 제외되었지만, 법정 대리인으로부터 복잡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 보다는 훨씬 매끄럽게 설문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담당자님은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제안드린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하기로 하셨죠.
고객이 '이거 해주세요!'라고 들고오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예상 가능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 포기할 것과 얻을 것 사이에 저울질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고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짜임새 있게 실현시킬 수 있도록 먼저 제안을 드리는 것. 이 또한 운영의 묘의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 어려운 조건을 극복 가능한 조건으로!
포켓서베이는 설문 대상자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고객들이 주로 이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의 확장을 위해 설문 대상자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고객들도 이용할 수 있는 패널 조사 서비스를 런칭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패널 모집 프로세스에 대한 테스트만 진행해보았을 뿐, 패널 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세스나 가격 정책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패널 조사에 대한 문의가 접수되었습니다. 설문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고, 목표 응답자 수는 조금 많은 편이었지만 모집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신규 서비스가 완벽히 세팅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영팀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직 신규 서비스의 틀이 완벽히 짜여진 상태는 아니므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 틀이 잡혀 있지 않더라도 고객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충분히 낼 수 있으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포켓서베이의 운영팀은 역시나 두번째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고객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가'였기 때문입니다. 운영팀에서는 적절한 프로세스와 가격을 논의했고, 견적서와 함께 그 내용을 전달드렸습니다. 그렇게 고객은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기능적인 한계에 봉착합니다. 포켓서베이의 특성상 제작할 수 있는 문항수가 60개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고객이 전달해준 설문지는 문항수가 80개가 넘어갔습니다. 그중 약 20개는 응답자의 특성을 묻는 질문들이었죠. 여기에서 운영의 묘는 어떻게 발휘되었을까요?
저희는 설문을 1,2차로 나눠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설문지의 내용이 똑같고 결과 데이터도 동일하다면, 하나의 설문을 몇 번에 나눠서 진행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고객이 전달해주신 문항 중 20개는 응답자의 특성을 묻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포켓서베이의 자체 패널을 모집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차 설문의 내용은 고객이 의뢰한 패널 조사의 응답자 특성 문항과 완전히 동일하게 제작한 뒤, 이를 '포켓서베이 패널 모집' 설문으로 배포했습니다. 고객이 의뢰한 패널 조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포켓서베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패널들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요. 이 과정에서 1차 설문을 진행하는 데 들어가는 홍보 비용은 포켓서베이에서 부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1차 설문 응답자를 필터링하여 문항 60개로 구성된 2차 설문을 발송했습니다. 1,2차 설문을 하나로 합치면 고객이 처음 전달해준 설문지와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고객에게 전달드리고 나서 추가적인 요청사항 없이 한번에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만큼 고객은 만족을 했다는 뜻이겠죠? 운영팀에서는 하나의 태스크(1차 설문)로 두 개의 목적(고객이 의뢰한 패널 조사 진행+포켓서베이 자체 패널 모집)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포켓서베이의 자체 패널 숫자는 2배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포켓서베이 운영팀은 패널 조사 서비스에 대한 '경험치'를 얻게 되어, 앞으로 들어올 패널 조사 문의도 자신감 있게 핸들링할 수 있게 되었죠.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을 이유는 많았습니다. 패널 조사에 대한 프로세스나 가격이 세팅되어 있지 않았고, 포켓서베이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체 패널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문항수도 무려 80여개나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운영의 묘를 발휘한 덕분에 부정적인 조건들은 '극복 가능한' 조건들이 되었고, 고객과 포켓서베이는 모두 각자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1년간 제가 경험했던 운영의 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포켓서베이의 운영팀에서는 '매일매일이 새롭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그만큼 고객의 요구가 다양하고, 새로 개발되는 기능이나 서비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이나믹한 환경 덕분에 운영 매니저의 미덕인 운영의 묘를 기를 기회도 많아서 저는 만족스럽네요!
그럼 오늘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