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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점 May 04. 2022

인정받을수록 불안해지는 사람

내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과 욕망



인정받고 싶지만

인정받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분명 다르다. 그것은 내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동한 결과다. 성실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성실하지도, 착하지도, 능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런 이상적인 인간상이 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더 힘들어졌다. 연기를 꽤나 잘한 덕분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더 커졌다. 내 본모습을 들키면 사람들이 실망할 것 같았다. 게으르고 때로는 무식하고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실망 시키는 것이 왜 두려울까?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성장 강박, 인정욕구와 같은 것들이 나를 자기 비하에 빠뜨리고 있었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항상 부족하게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들도 별로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요새는 칭찬을 받아도 순수하게 기쁘지 않다. 많은 업무를 잘 처리해 주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문서 정리를 가장 잘하는 분이다, 등등 확실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잘한다는 말이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이야기로 들렸고 잘하지 못하면 너는 필요 없다는 소리로 들렸다. 문서 정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문서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논리적으로 잘 정리가 되었는지 몇 번이고 검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친 부분이 나중에 드러나면 기분이 나빠졌고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런 실수가 나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렇게 완벽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채 살아왔다. 부족함을 들키면 안돼!


언제 한번은 회사에서 독서 스터디가 있었다. 스터디 전날까지 책을 읽기는 했지만 도저히 머리를 쥐어 짜내도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리뷰를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터디 시간이 다가왔지만 생각 정리는 되지 않았다. 느낀 것도 두루뭉술하고 논리도 없고 가장 중요한 실행 방안이 없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정리된 것은 없어서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라지고 싶었다. 갑자기 몸이 아파졌다고 말하고 반차를 낼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았다. 고작 독서 스터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싶었지만, 이 정도로 나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아마 준비성이 떨어지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세상에 가면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종종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외향적인 적도 없고 타인이 되어본 적도 없으니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모순 없이 있는 그대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착한 아이 콤플렉스, 성장 강박, 인정 욕구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좋지 않은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고 성장하지 않고, 인정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내가 나대로 사는 일일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나답게 사는 일일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지만 사실 방법은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나를 옭아맸다면 이제는 타인을 신경 쓰지 말고 나답게 살아야겠다며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이 또한 강박인 것 같다. 


'조하리의 창'이라는 이론에서는 자기의 모습을 4가지로 설명한다. 기준은 '나'와 '타인'으로 나뉜다.


1. 드러난 자기 :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 내 모습

2. 숨겨진 자기 :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내 모습

3. 가려진 자기 :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아는 내 모습

4. 미지의 자기 :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 내 모습


나만 알고 남이 모르는 '숨겨진 자기'가 진정한 나라고 생각했고, 타인이 알고 있는 '드러난 자기'는 내가 연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가려진 자기'와 '미지의 자기' 내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누구나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자기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의 기준에만 맞춰 사는 것도 문제지만 타인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사는 것도 문제였다. 타인이냐 나냐. 너무 이분법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 같다.



미지의 자기의 등장

과거의 나는 정말 내향적이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때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회의를 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종종 다른 사람들을 리드하기도 한다. 일을 잘해서인지 연차가 높아져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5명의 동료들을 가이드하는 리더도 되었다. 물론 여전히 소심하고 목소리도 떨리지만. 여하튼 과거의 나와 타인이 생각하지 못한 내가 나타났다.



나로 산다는 것, 내가 누군지, 어떤 나로 살 것인지 과연 하나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나야'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정말 많은 모습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선택해서 살려고 하니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나에게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지 않을까. '나에게는 모순이 있으면 안돼!'가 아니라 '나는 원래 모순적인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나도, 인정 욕구로 스트레스 받는 것도 나고, 가끔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나고, 이제 타인보다 나를 더 생각하며 살고 싶은 것도 나다. 


오로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던 과거의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 삶을 살지 못한 것 같다며 우울해하지 말자. 그저 이전에는 눈치 보는 내가 있었고 앞으로는 눈치를 버리려는 내가 있는 것일 뿐. 지극히 소심했던 과거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리드하는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의 내가 언젠가 툭 튀어나올 수 있다. 또 모순적으로 살았다며 거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고 환영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돌아보니 모든 것이 나였다? 무슨 드라마 제목 같지만 한 사람의 인생도 장편의 드라마라고 하니까. 갑자기 조성모의 가시나무새의 가사도 떠올랐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다.' 물론 내 밖에도 많다. 아직은 타인만 알고 있는 나의 모습.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 안에는 다양한 세포들이 있다. 세포들마다 성격도 천차만별이며 서로 싸우기도 한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자 다르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사랑하는 것, 건강해지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등.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유미의 편이라는 것.


이처럼 나에게 있는 다양한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아직도 모르는 나를 만나며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일부의 나를 잘못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편견에 쌓였던 나'였던 것 같다. 내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종종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조금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작성하면서 생각해보니 내 안에 있는 극단적인 나(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나였구나, 인정을 하게 된 것 같다.




타인에게도 있는 수많은 자기

가끔 다른 사람의 모순적인 언행을 발견하게 되면 저 사람은 왜이렇게 통일성이 없는지 납득하지 못한 적이 많다. 나도 그랬으면서 참 이기적이었다. 당연히 그 사람에게도 수없이 많은 자기가 있기 떄문일 것이다.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앞뒤가 달랐던 자기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후회를 하고 있을 수고 있다. 


다 똑같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상처 주거나 타인이 나에게 상처 주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험을 하더라도 조금은 이해하고 살아가면 어떨까. 사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사람이 있어서 더 이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분명 좋은 부분도 있는데 나쁜 부분만 크게 보는 것은 더 이상 멈추자. 나를 보는 시선에서도 타인을 보는 시선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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