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시작됐다. 현재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을 하고 있으며, 의무 휴업 대상은 대형마트와 SSM을 비롯해 복합쇼핑몰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의무휴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의무 휴업일에 많은 소비자들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찾는 대신 다음날 대형마트에 가거나 온라인에서 장을 보기 때문이다. 이에 소상공인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통한 수혜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책 설정 과정에서 '소비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소비자를 고려한다면, 대형 유통업체와 골목상권을 '대립 구도'로 보는 이분법적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형마트이건 골목상권이건 상관없이, 그 상품 혹은 매장 자체가 매력적이라면 소비자는 찾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 상태의 갈등 구도와 정책은 소매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고, 제로섬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이 둘을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며, 정부는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은 상생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상생의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로 출점하는 대형마트의 경우, 점포설계 단계부터 소상공인과 대형마트가 함께 입점하는 포맷을 구상할 수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대형마트와 소상공인이 취급하는 품목을 달리하여,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마트가 전개하는 No Brand 상생스토어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마트는 작년 8월 당진 어시장을 시작으로, 올 6월에는 구미 선산봉황시장, 7월에는 안성맞춤시장에 No Brand 상생스토어를 개점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서는 전통시장의 주력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노브랜드 제품을 취급한다. 최근 개점한 안성맞춤시장 점의 경우, 전통시장의 주력 상품인 신선식품과 화인마트(시장 내 동네마트)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산 주류와 담배를 판매 품목에서 제외했다.
이와 같은 포맷은 죽어가는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을 용이하게 한다. 실질적으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리뉴얼 이후 세 전통시장 모두 소비자의 발길이 늘기 시작했고, 대형마트도 새로운 판로를 확보했으며, 소비자의 만족도도 올라간 것으로 조사된다.
안성맞춤시장 지점은 이외에 다양한 상생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화인마트와 공간을 공유하며 임차료를 함께 부담하고, 청년 상생 카페 및 청년상인 점포의 집기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함으로써 '청년상인'과의 협업을 도모한다. 더불어 노브랜드와 화인마트 그리고 청년몰의 공동 마케팅도 실시한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그리고 청년상인을 아울러 상생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출점하는 대형마트의 경우 No Brand 상생스토어의 경우의 포맷을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점포의 경우 상생을 위해 매장의 포맷을 변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의무 휴업일에 정부 및 지자체로부터 부지를 지원받아 '주말 상생의 장'을 연다면 어떨까?
해답의 실마리를 뉴욕의 스모가스버그(Smogasburg)에서 찾아보았다. 뉴욕의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는 매주 토요일 스모가스버그(Smorgasburg) 푸드마켓이 열린다. 스모가스버그(Smorgasburg)는 뷔페를 뜻하는 스웨덴어의 스뫼르고스보르도(Smörgåsbord)와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의 합성어이다.
매 주말 백여 개 이상의 영세한 벤더가 참가하며, 독특하고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 스모가스버그는 요식업계의 벤처마켓이자 등용문으로 불리는데, 이곳에서 성공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대형 유통업체까지 입점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모가스버그와 같은 콘셉트를 차용하여, 주말 의무 휴업일을 상생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 및 지자체가 제공하는 부지에 일부는 지역 공동체의 업체를 배치하고, 나머지는 대형마트가 발굴한 벤더를 소개하는 것이다. 대형마트도 협조하는 만큼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소비자에게 상생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고, 신규 벤더 및 지역 소상공인은 홍보의 기회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소비자는 그동안 몰랐던 동네의 좋은 가게를 알게 되고, 새로운 벤더를 찾아 더 좋은 상품을 소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상공인, 골목상권, 전통시장, 청년상인. 이들은 대규모 자본이 갖지 못한 고유의 색깔과 다양성이 있다. 정부는 그러한 특성을 보존하고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대규모 자본과 영세업자를 대립적 관계로 재단하고, 대형 업체만 규제하는 방향이라면 상호 간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 브랜드 상생스토어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상생할 수 있는 포맷을 개발했고, 스모가스버그는 영세업자들이 새로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처럼 상생의 사례가 나오기 위해서는 소상공인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때 비로소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어,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