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가족행사를 대하는 옳은 자세에 대한 고찰
첫 명절, 추석의 가슴 따듯했던 함께 이야기
(2020년 추석의 이야기)
이 공간을 빌어 우선 고맙다는 말을 광역으로 흩뿌리듯 전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서 좋을 것 없고, 미안하다는 말은 만들어서 좋을 것 없을 거다. 아껴서 좋을 것 없는데 아낄 이유는 없다. 다시 한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내색은 않았지만 쉬운 자리였을 리 없을 하루의 이동경로를 밝은 모습으로 함께해준 나의 아내에게 전하고, 부모님께도 당연히 전해드리고, 2013년까지 키워준 할머니께 이제서야 전해본다. 그리고 뵙지는 못하였지만 어릴 적부터 파주 산소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의 성장을 지켜보려 내려와 주셨을 하나뿐인 할아버지께도 뒤늦은 감사를 올린다.
조금은 단출해졌지만 정성과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오랜만에 찾아뵙는다.
아내와 함께하는 첫 명절이고 첫 산소다. 모든 걸 차치하고 물리적 거리 자체가 만만치 않고, 일어나는 시간과 챙겨야 할 것들, 처음 인사드리는 어른들,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내색 하나 없이 되려 발 벗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주고 함께 해준 것만으로 고마움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되었다.
전통, 의식, 풍습, 관례, 예의.
중요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없다면 모두 허례허식일 뿐이고, 진정성 없는 하나의 소모성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루로 전락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명절에 이러저러한 말들이 불거지는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상술한 전통이나 관례를 젊은 세대들이 따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기실 본질은 존중의 결여에 기인한다고 본다.
내 자식을, 내 가족의 구성원이 된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감싸 안으며 각 객체의 맥락에서 생각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결혼을 소속과 소유의 이전으로 여기는 마인드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내 자식'과 '내 며느리'는 '내 것'이 아닌데 말이다. 조심스럽지만, 말이 도는 곳은 낮지 않은 확률로 이러한 스탠스를 가지고 있더라.
서로의 입장을 우선 생각해보고, 각 개인을 존중하고 그 맥락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행동한다는 기본자세만 갖춰진다면 비단 명절의 소소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많은 갈등들을 미연에 봉합할 수 있을 것인데, 말처럼 쉬운 게 아닌가 보다. 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러한 문제들에서 꽤 동떨어진 명절을 보낸 우리 가족 구성원들과 특히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다.
산소를 다녀온 후 집에서 차례주와 함께 한 끼 식사를 더 했다. 반나절 이상 기간 동안 우리는 첫 명절을 슬기롭고 나름대로 즐겁게 보냈다. 조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오고, 일련의 모든 행복한 나날들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문화가 만연한 오늘날이 되었지만, '아무리 못해도' 기브 앤 테이크는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우선은 그런 것 관계없이 내가 먼저 하나 더 양보하고 배려하며 퍼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행복의 눈덩이를 불려 나가고자 한다.
우리 이야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