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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컴 Jun 04. 2021

#5. 7월 어느 날의 이야기

결혼 2주 차 어느 날의 신혼일기



칼퇴의 맛을 알아버렸다. 요즘은 칼퇴가 당연하고, 뭐 그렇다고 저녁 7시 0분 정시 퇴근은 아니지만, 그래도 7시 10분 정도면 회사를 나선다. 일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은근히 이것도 자세의 문제였음을 알아가고 있다. 일이 많아서 못 가는 건 정말 불가피한 일이고, 일이 많은 날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일이 적당하거나 조금 여유가 있는 날들인데, 이런 날도 무언가를 찾아서 하느라 7시 반, 심지어 8시까지 한 시간 이상을 초과해서 일을 한 적이 적지 않았다. 


나의 성장과 업무에서의 책임을 다하고,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자세일 수도 있었겠지만 뭐, 지금까지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게 정답은 아닐 거다. 나에게는 저녁 이후의 소중한 삶이 있고, 그 삶을 공유하는, 이 시간을 학수고대하는 내 사람이 있다. 나의 일 이상으로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고, 이 소중한 시간들을 공유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 


아직 신혼이라 하루에 1개씩만 집안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평일에 하자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낡은 싱크대 배수를 개선했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저분하고 엉망이었던 싱크대는 늘 눈엣가시였다. 두고 볼 수 없어 오늘 다이소에서 약 4-5천 원에 배수를 뚫는 용액과 새로운 거름체를 구매했다.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서 뿌듯하다. 관이 막혀서 이따금씩 물이 역류했는데, 이 문제도 개선된 것 같다. 물론 종종 봐줘야겠지만, 만족스럽다. 이어진 저녁으로 아내가 사준 마늘 바게트 빵과 초밥이 정말 맛있다. 마음 씀씀이에 감사할 따름이다. 기분이 좋아서 맥주를 곁들였다. 이게 신혼이고,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술이다. 술.


자율과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이 포근한 평일 밤 한 끝자락에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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