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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컴 Nov 08. 2020

#1. Intro - 알파고와 이세돌과 뭐?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될 줄 알았는데 못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바야흐로 알파고가 이세돌을 셀 수 없이 꺾어대며, 동시에 새로운 산업의 물결이라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스포츠 일하면서 한없이 녹아내리던 한 젊은 영혼에 마른하늘의 단비가 되어 주었다. 유일한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앞으로 내게 어떤 풍파가 다가올지, 어떤 고초를 겪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새로운 물결인지 뭔지의 등장과 로봇이 어쩌고 혁명이 어쩌고의 인지 자체만으로 왜 나는 내 미래를 송두리째 맡기게 되었을까?


당시 일이 너무 힘들었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내가 스포츠는 늘 나와 함께였고,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20대 말미까지 여자는 잘 몰라도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키워드는 스포츠, 특히 축구였다. 축구는 물론이고 야구, 농구, 배드민턴, 심지어 배구와 핸드볼까지, 적어도 구기종목에 관해서는 또래들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두루 즐기고, 관람 스포츠로서의 관심도 또한 매우 높았던 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스킵하고 몰래 집 근처 축구장에 갔었고, 대학교 시절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이런 내가 스포츠 업계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들이 있었는데, 이 중 첫 번째는 아니지만, 음 그래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빅데이터'라는 화두를 내가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다. 


2016년, 빅데이터는 정말 '뜨거운 감자'였다. 너무 뜨거워서 호호 불어서 먹을 수도 없고 정말 지켜만 봐야 했던 감자긴 했었지만, 맛있어 보이기는 했었나 보다. 내가 이전까지 믿어왔고 넘겨짚어 상상할 수 있었던 데이터에 대한 개념의 최대치는 '경험적 직관과 ERP에 적재된 CRM 데이터를 결합하여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를 찾아내어 마케팅을 해보자' 정도였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ㅋㅋ 그렇지만 정말 당시 내 인식 수준이었고, 그래도 '생각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빨리 캐치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한편으론 들기도 한다.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라는 개념을 운운했다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ㅋㅋㅋ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고, 난 그 기회를 잡고 싶었다.


이랬던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녀는 빅데이터. 판매 데이터만 가지고는 턱도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직감을 했고, 지쳐가던 내게는 이게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막연하게 어두운 터널의 어디서 확연하지 않은 빛 한 줄기 보고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하듯 그렇게 일단 앞으로 걸어나갔다. 기실 기어간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만으로 변화였고 의지였다.


약간의 서칭과 고민 끝에 이제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가 되겠다는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기로 결정했다. 대신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숫자와 데이터를 공부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결정은 쉬웠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운 결정이었다. 퇴사 결정. 산업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 적용될 빅데이터라는 놈을 긴 호흡을 가지고 공부해보자. 


그리고 데이터 사이언 어쩌고 그거나 해보자. 

용서해 주자. 이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다. 


야호, 이제 주말에 출근 안 하고 K리그 볼 수 있어. 

주말에 K리그 보고 주 중에 재밌게 공부하고 일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될 생각에 2016년 어느 날의 나는 정말 날아갈 것만 같은 해방감을 느껴버렸다. 그 순간의 결정이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떠한 변곡점을 가져다줄지도 모른 채, 데이터 사이언 어쩌고의 정체도 모른 채...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열정과 도전정신, 막연한 목표 설정과 해방감들로 점철된 마음가짐으로 싸맨 군장과 함께, 그렇게 회사의 두꺼운 문을 쾅 닫고 뛰쳐나왔다. 해방감이 가장 크게 들어있던 군장은 순간 새털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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