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에살다 Apr 14. 2021

과학기술과 종교,
생태문명 전환을마주하다.

과정신학의 대가 존 B. 캅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생태문명’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온 그는 뒷굽 많이 달은 신발에 90대의 노구를 싣고서 바삐 한국의 서울을 누비었다. 방한 전에 캅 교수는 중국 공산당 초정으로 중국 저장성 리수이시의 생태도시 건설을 둘러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땅을 밟았다. 한신대에서 열린 제3회 <생태문명의 전환을 위한 종교와 과학의 대화>라는 국제학술대회, 서울시가 주최한 <전환도시 국제 컨퍼런스>, 지구와사람포럼이 개최한 <생태문명 컨퍼런스>에서 연이어 특강과 발표를 했다. 그는 산업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와 함께 생태문명 전환을 위한 담론을 펼쳤다. 


여러 커퍼런스 참여를 위해 방문한 존 B. 캅 교수


시대의 요청인 생태문명 전환

이제 생태문명 전환은 여유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에 긴급히 요청되는 전환이다. 1944년 출간된 <거대한 전환>에서 칼 폴라니는 시장경제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경고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의 죽음을 선언했다. 오늘날 요구되는 ‘거대한 전환’은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산업문명이 주는 산업자본의 환상에서 벗어나 생명친화적인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체계로의 전환이다. 최근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는 우리에게 생태문명으로의 거대한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문명의 전환은 단지 관점의 전환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문명의 전환은 대안적 삶과 대안 사회를 요구한다. 문명의 전환은 대안적 스타일을 요구한다.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인간 사회가 기존 산업문명에서와는 다른 생명친화적 스타일을 표방하며 추구하기를 요청한다. 여기서 스타일은 단순히 ‘방식’이 아니다. 스타일에는 합리성, 추론 체제, 실천 등이 어우러진다. 산업문명과 다른 생태문명의 스타일은, 기존 스타일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합리성과 가치, 새로운 문제 해결 매트릭스, 새로운 인식과 추론 체계, 생명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실천 등을 요청한다. 



하이브리드 과학기술

이러한 요청에 과학과 기술은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생태문명은 분명 산업문명에서와는 다른, 과학기술 실천의 이미지를 형성해나갈 것이다. 지금의 과학기술이 보이는 이미지는 지나친 상업화이며 이로 인한 자연의 사유화이다. 생태문명 속 생명의식이 형성해가는 이미지는 과학기술로 하여금 작금의 실천에서 벗어나길 요청한다. 새로운 가치와 매트릭스를 요청한다. 또한 생태문명의 분권적 시각은 산업문명이 억압하고 감춰왔던 목소리, 즉 차별받아왔던 여성과 장애인, 사회적 약자, 파괴된 자연을 사회의 주체로 세워나가 과학기술혁신 궤도에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생태문명 전환이 가져올 이러한 모습은 독점과 배타가 아닌 신뢰와 소통 그리고 참여에 무게를 둔다. 이러한 생태문명 안에서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과 사회, 자연과 인간이 구분되는 근대적 이원론이 아닌 서로 뒤섞인 하이브리드(hybrid, 혼종) 관점에서 형성된다. 과학기술이 예술, 생태, 건축, 법,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와 혼종된 문화가 발전할 것이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의 경계가 무너진 문화이다. 


생태문명 전환을 위한 기독교 역할

이러한 생태문명 전환이 그려가는 과학기술의 하이브리드 문화에 대해 기독교는 결코 외딴섬으로 남지 않는다. 도리어 기독교는 과학기술과 소통하며 하이브리드 문화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독교는 어떤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 하나는 과학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 제국주의는 소통과 참여의 하이브리드가 아닌 독선과 배타의 사고체계이다. 이에 대한 기독교의 날 선 비판과 성찰이 필요하다. 둘째, 기독교는 생태문명 전환에 대한 종교적 서사를 선사할 수 있다. 이 종교적 서사 가운데 기독교는 생태문명 전환의 방향과 더불어 생태문명이 지닌 종교적 의미와 가치를 과학기술문화 속에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대변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생태문명 전환으로 인해 다시 들리는 목소리들이 과학기술문화에 반영되도록 대변인으로서 기독교는 활동할 수 있다. 여성과 약자뿐 아니라 생태와 미래세대에 대한 대변인으로 기독교는 과학기술문화에 그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다. 



『영적 파산』의 서문에서 존 캅 교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구 생명계 전체가 직면한 거대한 파멸의 위기가 임박해질수록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이런 온전한 정신 상태이다.” 오늘 한국 기독교는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이 든다. 그렇지만 한국 기독교는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려는 성찰과 노력 가운데 생태문명 전환의 주체가 되어, 과학기술과 대화하며 하이브리드 문화를 형성해나갔으면 한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생태와 신앙 그리고 과학기술의 만남을 진지하게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태양광은 왜 산으로만 가는 걸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