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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Oct 03. 2018

가을, 따뜻한 라떼의 계절

푸른 가을 하늘에 코가 시려 가을엔 라떼를 마신다


지난달 중순 무렵부터 서서히 찬 바람이 부는구나 싶더니 이제는 누가 뭐래도 가을, 가을이다. 


내가 사는 New Haven에는 딱히 우기라고 부를만한 시즌은 없지만 그래도 언제 비가 가장 많이 왔더라 생각해보면, 5월? 9월, 아님 10월? 이 즈음인 것 같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이렇게나 맑고 청명하고 아름답기만 한 하늘인데, 반대로 비가 예보된 날에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처음 만나는 공기부터가 낯빛이 어둡다. 비 내리지 않는 날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워 유독 이 시즌에 비가 자주 내린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비가 내릴 땐 가만히 실내에 틀어박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원망스럽던 빗소리조차 좋아지게 되는, 정말이지 완연한 가을인 것이다.


가을의 뉴욕, 센트럴 파크
가을의 New Haven 풍경


날씨가 너무 좋은 날에는 참지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주말에는 조금 먼 길을 가기도 하고, 평일에는 지치지도 않고 집 주변, 일하는 곳 주변을 자꾸자꾸 걷는다. 아직 완전히 두터운 옷들을 꺼내 입은 것은 아니라 가끔은 쌀쌀함에 몸이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같은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던 지난 여름을 생각해 보면 어느새 이렇게 계절이 바뀌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새삼 이 순간이 소중해진다.


잠깐 드라이브를 나갈 때에도 요즘엔 늘 선루프를 열어 두고 달리는데, 서늘한 바람을 타고 솔솔 들어오는 가을의 향기가 너무나 낙락하여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가끔 손을 뻗어 바람을 만지면 손 끝에 닿는 가을의 감촉이 너무도 애틋하여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구름 좀 봐, 하늘이 정말 예쁘다!


어떤 순간에 시선을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아도 늘 청명하게 아름다운 가을 하늘. 그 푸르름에 코가 시려, 가을이 오면 나는 항상 따뜻한 라떼를 마신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라떼를 주문하여 마셨는데, 미국에서는 별 수 없이 라테를 주문하여 마신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lǽtei로 발음되는데 약간은 흐르는 듯한 이 라테의 발음이 가을의 정서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좋다.


뉴욕의 카페 Abraço에서의 카푸치노
뉴욕의 카페 BIRCH Coffee에서의 CORTADO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뉴욕에는 말 그대로 황홀할만치 맛있는 커피를 파는 특색 있는 카페들이 많아 갈 때마다 늘 셀레는데, 그중에서도 AbraçoBIRCH Coffee의 커피가 떠오른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흐르는 음악까지 아주 힙스러운, 뉴욕 감성 물씬 풍기는 Abraço는 소호 근처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유독 진한 커피의 맛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우유의 느낌이 아주 일품인 카푸치노, 혹은 라떼를 즐길 수 있다.


역시 특유의 약간 시면서도 달콤한 원두의 맛과 부드러운 우유가 잘 어우러져 정말이지 맛있는 라떼, 혹은 Cortado를 맛볼 수 있는 BIRCH Coffee. 이 카페는 맨해튼에 여러 개 지점이 있는데 미드타운에서도 가까운 곳이 있어 관광객들도 비교적 쉽게 가 볼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가 보면 뉴요커들만 가득해 보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않고 내가 사는 New Haven에서만 찾아보아도 기가 막힌 커피를 만들어 내는 카페들이 몇 곳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은 단연코 Koffe?라는 곳.


우리 커피(Koffe?)에 커피(Coffee) 마시러 가자.


이 농담은 질리지도 않고 삼 년째 애용하는 중. 이 곳은 늘 갓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만들어 주는데, 예전엔 커피가 프레쉬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최 몰랐다가 그 단어의 뜻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때가 바로 이 곳에서 정말 막 로스팅 한 원두로 만들어 준 커피를 마셔보았을 때였다. 이 곳의 라떼도 카푸치노도 참 맛있다.


스타벅스에서는 늘 라떼의 우유를 소이밀크로 바꾸어 마신다


가을은 어느 카페에 가서든 (심지어 스타벅스에 갔을 때에도)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들고 나와 야외석에서 천천히 즐기기에 너무도 완벽한 계절이기 때문에 아주 자주 그렇게 즐기곤 한다. 그런데 커피를 들고 나와 자리를 잡고 앉을 때쯤 되면, 커피를 사러 나오는 길의 찬란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는 물에 젖은 듯 풀이 죽어 버리고 만다. 하늘은 너무 멋지고, 바람의 향기도, 그 감촉도 지금 다 누려버리기 아까울 만큼 좋기만 한데, 과연 이 가을은 언제까지 곁에 머물러 주려나. 살갗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으로 변할 때쯤이면 이번 한 해도 어김없이 저물고 말겠지.


어째서 아름다운 순간은 항상 이렇게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리고 마는 건지. 금세 사라져 버릴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한 가을의 하루, 오늘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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