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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Sep 27. 2018

참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결혼 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다닌 지 어언 3년 여가 되어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맞추어져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불현듯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늦은 퇴근 시간을 공유하는 탓에 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손발 맞춰 재빠르게 아주 늦은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데, 누가 무얼 하라 말할 필요 없이 뚝딱뚝딱 순식간에 밥상이 차려져 버리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집에 도착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착착, 내 할 일을 한다. 빨래를 하고 나면 어떻게 분류해서 누구는 널고 누구는 재빠르게 개고, 쓰레기를 버릴 때는 누구는 박스를 챙기고 누구는 쓰레기를 담은 비닐을 정리하고 하는 이런 일들에 있어, 내가 이거 할게 너는 뭐해, 하는 말을 일일이 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거다. 우리는 어느새 잘 조율된 하나의 팀처럼 매우 효율적으로 다양한 가사일을 처리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일적으로만 효율적인 관계로 발전해 왔냐고 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간밤엔 자려고 눕는데 남편이 너무도 자연스레 내게 팔을 내어주고 또 나는 마치 그 팔이 제2의 베개인 냥, 일상처럼 그 위로 목을 뉘이는 거다. 그 모습이 우스워 순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어느새 새벽녘, 잠결에 시계를 봤는데 일어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 아- 싫다. 인상을 찌푸리며 남편의 몸을 끌어안았는데,


우리 언제부터 이렇게, 마치 일부러 만들어 낸 퍼즐처럼 몸의 한 부분도 떨어지지 않도록 온 몸을 꼭 붙여 안을 수 있는 몸이 되었지?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 또 웃음이 났다.


무언가, 부담스러운 일이 자리하는 하루를 시작할 때면, 그래도 곧게 서서 내 일을 스스로 처리해 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이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고 나면 오늘 밤엔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와인 한잔에 맛있는 밥 먹을 수 있겠지, 그땐 진짜 행복하겠지, 생각하며 하루를 견딘다. 남편과 함께하는 밤의 힐링타임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도 못 하겠다. 싸울 땐 세상 가장 미운 사람처럼 구는 주제에, 사실은 이렇게 서서히 서로의 빈틈을 메우며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나 보다 우리.



요즘, 밤의 가장 아늑한 장면들의 사진을 찍어대는 버릇이 생겼다. 자려고 눈 꼭 감고 누운 남편의 모습이라든지, 방 문에 비친 남편의 그림자, 아니면 그냥 이불을 제대로 펼치느라 휘릭- 휘날리는 뭐 그런 사진들. 남편도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처음엔 싫은 척 굴지만 그래도 결국엔 얌전히 얼굴을 내어준다. 


제일 아래 사진은, 자려고 누워서 눈을 꼭 감은 남편의 얼굴을 찍으려는데 남편이 피하느라 이불을 휙- 덮어버리는 바람에 놓쳐버린 순간. 일과 중 핸드폰을 만지다 생각나서 가끔씩 한 번씩 열어보는데, 볼 때마다 이 사진을 찍은 순간의 깔깔대던 감정과, 방안의 그 따뜻했던 공기가 그대로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 오늘도 힘내자. 집에 가면 또다시 이 방에서 남편을 꼭 안아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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