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또 굴을 먹어야지
남편은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사실 매우 여러 번 얘기했었다. 굴이 먹고 싶다고. 그동안 내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게지.
그렇지만 나 역시도 굴이 먹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하면서도 굳이 남편 손을 끌고 아주 적극적으로 굴을 먹으러 가자고 조르지는 않았는데, 먹고 싶다 말은 하면서도 솔직히 얼마만큼 먹고 싶은 건지는 스스로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나도 친분이 있는 남편 친구들 모임엘 갔다가 아주 우연히 굴 더즌 (정확히 말하면 굴 더즌이 포함된 아주 화려한 어떤 음식)이 주문되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 내가 허겁지겁 거의 모든 굴을 다 먹어버린 거지. 스스로를 변명하자면, 다들 랍스터, 크랩 등에 정신이 팔려 있던 터라 당시 굴은 찬밥신세였고 나는 굴에만 집중하느라 모두가 감탄했던 랍스터, 크랩 등은 거의 맛도 보지 않았다. 정말이다.
거침없이 먹어 나가다가 순간 내가 정신을 차렸던 건, 남편의 아주 친한 형, 나와도 나름 깊은 친분이 있던 한 오빠가 남들 모르게 자기 앞에 놓여있던 (나에게는 조금 멀어 아직은 무사했던) 굴을 내 쪽으로 쓰윽- 밀어줬을 때였다.
아, 이거 다 쉐어하는 거였지.
남편은 정말 지독히도 놀렸다. 깔깔대며 웃으면서, 누가 보면 굶긴 줄 알겠다. 그렇게 먹고 싶었음 진작 얘길 하지 그랬냐며. 분했지만 참아야지.
하지만 역시 날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남편은 놀리는 걸로만 끝내지 않고, 바로 다음 주말 나를 데리고 굴을 먹으러 갔다. 실컷 먹으라며, 더즌을 시켜 먹고 나서는 더즌을 따로 하나 더 주문해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오기까지 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렇게 두 번 정도 먹고 나니, 이제 더 이상 굴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또 굴, 구울, 굴 타령을 해 대겠지만.
한국에서는 굴을 먹을 때 청양고추 한 조각, 마늘 한 조각에 초장을 얹어 후루룩- 먹었었지. 늘 반주는 막걸리였다.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아주 자주 갔던 선술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굴은 겨울에만 나오는 귀한 메뉴였기에 겨울이 되면 굴을 먹으러 갔고, 반대로 굴이 나오면 겨울이 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굴에 레몬즙을 짜서 홀스래디시가 들어간 소스와 함께 먹는다. 굴이라면 당연히 초장이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여기 미국 바에서 내어주는 소스도 꽤 입맛에 맞는다. 여기서는 곁들이는 술도 막걸리가 아니라 화이트 와인, 혹은 샴페인이어야 하겠지.
여하튼, 굴이라고 하면 한국, 우리가 자주 가던 그 허름한 선술집의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이번 기회로 굴이라는 음식에 새로운 색이 덧입혀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 한국의 선술집과는 사뭇 다른,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쳇-), 과하게 친절한 서빙을 받으며 먹는 미국에서의 굴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