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을 지불하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우리가 계약한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남는 기간 2주 동안 잘 지내던 임시 거처를 떠나 드디어! 우리의 미국에서의 첫 집으로 이사 들어갈 수 있는 날이 되었다. 마침 금요일이어서 조금 무리하더라도 주말 동안 쉬면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금요일 일을 끝낸 늦은 시각, 우리의 조촐한 이사가 시작되었다. 같은 건물 14층에서 5층으로만 가면 되는 간단한 이사였지만 퇴근 후 가뜩이나 지쳐있을 때에 하려니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올 때 우리가 가지고 왔었던 커다란 캐리어 4개 분량의 짐을 포함하여, 어두운 집을 밝힐 필요는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사야 했던 램프들 몇 개, 2주 동안 아쉽게나마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에어베드와 침구들,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구입했던 냄비 같은 식기들, 그리고 식탁에 의자 두 개까지!
옮겨야 할 짐들은 이 정도가 다였지만 다 옮기고 났더니 또다시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 침대도, 소파도, 화장대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마음만은 잔뜩 신이 났었지.
다음 날은 잠시 출근을 해야 했기에 우리는 일요일이 되어서야 대대적인 가구 쇼핑을 하러 갈 수 있었다.
가구를 구입하러 가기 전 우리가 준비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트럭! 미국 내 트럭을 빌려주는 업체들은 다양하게 있지만 우리는 그중 가장 일반적인 U-HAUL을 이용하였다. 4시간을 대여하는데 19.95달러의 아주 저렴한 가격 (보험비는 별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트럭이라고 해서 수동일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U-HAUL의 트럭은 모두 오토라고! 한국에서도 카니발 정도는 렌트해서 운전해 본 경험이 있던 남편은 어렵지 않게 U-HAUL의 트럭을 운전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서 했던 두 번의 이사에서도 우리는 U-HAUL의 트럭을 아주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트럭을 빌려 근처 IKEA에 갔다. 긴 시간의 쇼핑 끝에 우리는 이 날 하루에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소파, 화장대, 화장대 의자, 거실 테이블, 매트리스 커버와 베드 스프레드, 그리고 쿠션 등등을 모두 구입하였다.
트럭을 가득 채운 우리의 가구들. 매트리스를 구입할 때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 무척 편안하고 마음에 들던 매트리스가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마지막까지 결정이 힘들었다. 우리가 과연 이걸 집까지 잘 옮길 수 있을까? 그래도 기왕 사는 것 마음에 드는 걸로 사야지, 하는 생각으로 구입을 강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날 나는, 살다 살다 내가 이런 고생은 처음이다 싶을 만큼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IKEA에서 제품들을 구입하고 트럭에 싣는 일부터가 고난이었다. 매트리스를 제외한 가구들, 침대 프레임, 그리고 소파나 테이블도 절대 가볍지는 않았는데 그런 것들을 다 실은 후 정말 지쳤다 싶을 때에 옮겨야 했던 가장 무거운 매트리스. 너무너무 힘들어서 이때 우리는 정말 심각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어느 한편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주 건장한 어떤 남자가 먼저 나서서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이게 웬 떡이야? 싶어 나는 그 도움을 받아들이고픈 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웬걸... 남편은 내가 아- 소리를 내기도 전에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남편은, 이 사람은 아마도 IKEA의 직원인 듯한데 도와 달라고 했다가는 분명 또 팁을 줘야 할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은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딜 가나 팁을 줘야 하는 상황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던 (어느 정도 불만도 품고 있었던) 시절의 일화로 지금은 우스갯거리로 꺼내곤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의 나는 전혀 웃음이 나지 않았다. 팁을 줘야 하면 또 그게 얼마나 된다고, 도움을 받고 말지 왜 그런 거야!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그냥 내 생각으로 그는 IKEA의 직원은 아니고, 그냥 선의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어진 운전은 그나마 쉬웠던 과정.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에 도착해서 거대한 매트리스를 어떻게든 비좁은 엘리베이터에 구겨 넣는 일부터 해서, 우리의 침실까지 옮기는 과정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이 없이는 다시 떠올리기 힘들 지경이다.
이후 미국에서의 마지막 이사를 할 때에는 남편과 나 (심지어 나는 임신 중이었다) 둘이서 이 매트리스를 이렇게까지는 힘들지 않게 옮길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때의 기억이 살짝 과장되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확실히 이 때는 우리에게 요령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고, 사용한 핸드 트럭도 아주 부실했던 데다, 처음 살던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렇게 힘들게 집에 왔다고 해도 결코 우리는 휴식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사온 제품들을 가능한 한 많이 조립해야 했으니까.
가장 처음 완성했던 것이 바로 이 침대! 조립 매뉴얼이 다른 가구들에 비해서는 조금 복잡하여 처음부터 전체적인 과정을 조금 숙지하고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런 것도 완전히 처음 해보다 보니 조금 헤매기도 했던 것 같고, 침대를 조립하기 전 구성 요소들도 큰 판 같은 것은 꽤 무거워서 한 사람이 들고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나사를 조이거나 할 때에 한쪽 끝을 들고 있는 등 둘이 함께 열심히 조립을 해야 했기에 저 첫 사진을 찍기 전까지는 사진이 전혀 없다. 저 첫 사진을 찍을 때쯤에야 비로소 우리가 오늘 밤엔 어쩌면 침대 위에서 잘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었지.
이 침대는 처음엔 조립하는 것도 꽤나 힘들었던 기억인데, 이후 두 번의 이사를 하며 프레임을 풀었다가 다시 조립하기를 또 두 번이나 반복하고 났더니, 이제는 설명서 없이도 뚝딱 조립이 가능할 지경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침대 조립을 끝내고 나니 이후 다른 가구들의 조립은 무척 쉽게 느껴졌다. 그건 실제로 조립이 쉽기도 했겠지만 혹여라도 조금 힘들다 싶은 생각이 들 때 고개를 들어 침대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래, 우리가 저 힘든 침대도 조립했는데, 하는 생각에 힘이 났던 덕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날 우리는 소파와 소파 테이블까지를 조립하였지만, 화장대는 조립을 하다 보니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화장대는 안 되겠다, 포기하자. 하고 이 날의 가구 조립은 이만 마치기로 결정했을 때, 이미 시각은 밤 1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도 이 날의 가장 큰 수확은 누가 뭐래도 침대를 조립했다는 데에 있다. 지금 봐도 아늑한 우리의 침대. 이 날 우리는 6월 말 한국, 우리의 첫 신혼집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꿀잠을 잤던 이후 한 달도 더 지나서야 드디어 우리 집, 우리 침대에서 다시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틀쯤 후에 결국 조립에 실패한 화장대는 환불하고, 다른 제품으로 구입해 와 드디어 완성해 낸 화장대. 이전까진 냄비 박스 위에 화장품들을 올려놓고 화장대 대용으로 사용했었는데, 정말이지 지금 봐도 감개무량한 장면이다.
미국에서, 우리의 첫 집으로 이사를 들어가게 되었던 그 주 주말 내내 워낙 고생을 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이제는 제대로 짐들을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퇴근 후엔 쉴 새 없이 일을 해야 했기에 새 집에서의 첫 한 두 주 정도는 정말이지 몸이 말이 아니게 힘들었다. 의자에 앉았다 설 때마다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이렇듯 아무것도 없는 집에 사용할 가구를 한 번에 다 구입해 와서 조립하는 일은 몹시 힘든 과정이었다. 적은 돈을 들인 것도 아닌데, 왜 이건 집에 가져와서 이렇게 또 조립이라는 걸 해야 하는 건가, 우리가 이렇게 한 번에 IKEA에서 가구를 구입해 온 것이 과연 잘한 결정인가 하는 등의 생각들이 마구 몰려왔다가 사라지고, 가끔씩은 너무 힘든 나머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물론 IKEA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집으로 배송을 해달라고 하면 비용을 받고 해주기도 한다. 우리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비용이 저렴하지도 않은 데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루빨리 침대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제품의 배송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해보자! 하고 저지른 거였지만, 막상 일을 다 마치고 보니 IKEA에서 그리 비싼 값으로 배송 서비스를 해도 다들 돈을 들여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끝판 왕 미국에서, 돈을 지불하라고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던 거다.
이렇게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다 조립을 한 후에는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특히 옮기느라 가장 고생했던 침대 매트리스는 정말 편안하여서, 한국에서 지인들이 와서 침대에 누워보고는 이 매트리스 뭐야? 되게 좋다- 하는 식의 말을 한두 마디씩 해줄 때에는 감격스러움에, 저 매트리스를 사서 옮기고 조립까지 해 냈던 과정들이 마치 녹음기를 틀은 것처럼 줄줄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곤 한다.
이 즈음엔 남편과 나는 모두 새로운 미국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 지 이 주일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새로운 직장에 적응이 되었다고 말하면 절대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 시절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미국 첫 집으로 이사도 들어갔고, 하루하루 조금씩이나마 생활이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아주 조금은 뿌듯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