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비맘의 출산 이야기_02
아이를 낳은 것은 오전 11시경이었지만 이런저런 후처리 후 회복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오후 1시가 지나서였다. 나와 아이를 돌보아 줄 회복실 간호사들, 의사들과 인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간호사가 와서 메뉴가 잔뜩 적힌 팸플릿을 주며 점심을 주문해서 먹으라고 했다. 이 곳은 딱히 식사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아무 때나 몇 번이고 원하는 음식을 전화로 주문하면 내가 있는 회복실까지 음식을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메뉴가 워낙 많아 뭘 먹을까 고민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카프레제 샌드위치. 그리고 남편은 연어 요리를 골랐다. 메인 요리 외에 연어 요리 옆에 사이드도 추가할 수 있고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류도 다양하게 있어서 이것저것 골라서 주문하면 되는 건데 처음엔 그게 파악이 잘 안 돼서 둘 다 메인으로 먹을 것만 달랑 하나씩 주문하고 말았던. 나중엔 좀 적응이 되어 식사는 뒤로 갈수록 점점 푸짐해졌다.
사실 이 음식 배달 서비스는 회복실에서 뿐만 아니라 분만실에서도 받아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차피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알지 못했는데 남편은 알고도 음식을 전혀 배달시켜 먹지 않았다. 2박 3일을 남편은 맨 정신으로 쫄쫄 굶고 있었던 거다. 내 몸이 워낙 힘들어서 남편이 어쩌고 있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출산 후 제정신으로 살펴보니 남편도 무척 지쳐 보였다.
첫날은 몸의 회복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일단 휴식을 취하라는 지시에 따라 마냥 쉬었다.
나는 출산 과정이 무척 길었던 것에 비해 회복은 무척 빠른 편이었는데, 자리에 앉아 첫 식사를 마치고 난 후 화장실을 가고 싶어 졌을 때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부터 두발로 걸어갈 수 있었고 때때로 아이를 보러 회복실 안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정도였다. 내가 혼자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간호사들이 놀라 멀리서 뛰어올 정도.
사실 일반적인 1인 회복실의 경우 이보다 조금 더 좁고 아이의 침대가 엄마의 침대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아가의 경우 내가 출산 과정 중 체온이 오른 바람에 감염의 가능성을 가지고 항생제 투여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내 침대에서 볼 때 저렇게 멀찍하게 떨어져서 뉘어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곳은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의 케어를 받는 곳이었고, 아이가 누워있는 저 공간은 소아과의 의사와 간호사의 케어를 받는 공간이다. 이렇게 엄마가 치료를 받는 아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회복실의 수는 워낙에 적어서 처음에는 아이와 다른 방을 배정받을 뻔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 방이 정리가 끝나서 가까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있는 침대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아이의 머리꼭지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방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는 비교할 바 못되니까.
첫날은 간호사나 의사들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날 찾아오지 않아서 계속 잠을 자거나 먹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어느덧 밤이 되어 멀리서 아이와 남편을 찍어 본 모습. 내 길었던 출산 과정 동안 역시 한숨도 자지 못한 남편도 이른 저녁부터 지쳐 잠들었다.
내 출산 과정이 워낙 길어서 그런 건지 출생 당시 아이의 혈당이 기준치보다 낮아서 모유수유를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분유를 먹여야 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출산 후 첫 24시간은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해야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마냥 쉴 수 있었다.
출산 때까지 내가 투여받고 있던 주사제, 유도분만제와 lactate 주사, 그리고 항생제까지 투여가 모두 끝난 후에 하나하나 주사를 제거하였는데 (lactate 주사는 내가 화장실을 잘 갔는지를 확인한 후에야 투여가 종료되었다) 내 체온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언제 다시 IV 주사를 투여받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사 선은 제거하지 못한 채로 첫날밤은 지내야 했다.
나름 평화로웠던 첫날에 비해 이튿날은 무척 분주했다. 첫날 음식 메뉴 팸플릿을 받으면서 함께 병원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는 패킷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아이의 출생신고서가 들어있었다. 그걸 얼른 작성했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이튿날 아침부터 출생신고서를 얼른 작성하라는 닦달을 들어야 했다. 출생신고서를 거두어가는 사람만 왔다간 게 아니라 이튿날 새로 바뀐 간호사와 의사들도 와서 인사를 하고 가고 퇴원 후 아이의 담당이 되어줄 의사도 왔다 가고 보험 관련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왔다 가고 하는 통에 출생신고서는 시간 안에 결국 작성을 못하고 다음날 제출해야 했다.
오전 10시경에는 Lactation Consultant가 방문해서 나에게 모유수유를 하길 얼마나 원하는지를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모유수유를 시도해 보며 자세를 교정받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나는 사실 모유수유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는데 consultant가 아이의 상황을 보더니 아직 아이가 빠는 힘이 워낙 좋고 내가 모유수유에 대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의료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분유를 먹이는 것을 중단하고 바로 이 시간부터 모유수유만 시도해 보자고 제안해주었다. 의사의 의견을 물었을 때 그리 해도 좋다는 답변이 나와 아이가 태어나고 딱 24시간이 지났을 때부터 모유수유를 시작하였다. 첫날에는 모유수유를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래도 잘 쉬었는데 이튿날부터는 매 2시간마다 모유수유를 해야 해서 제대로 쉴 수는 없게 되었다.
보통 초산의 산모의 경우 출산 후 이틀에서 삼일 정도 후부터 모유가 나오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처음에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서 아이가 거의 쫄쫄 굶기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시간마다 가서 모유수유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뭘 먹질 못해서 그런지 그다음 수유 텀이 되기도 전에 배가 고픈 듯 계속 울어댔다.
그리고 이날 오후 다섯 시경, 왼팔에 달려있던 IV 선을 제거하였고 드디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날이 수요일이었는데 나는 일요일 밤에 몸을 씻은 후 처음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동안 땀도 엄청 많이 흘려서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났는데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샤워를 즐겼다. 회복이 워낙 빠른 상황이라 혼자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연분만의 경우 보통 병원에는 2박 3일 동안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그다음 날은 어느덧 퇴원을 하는 날이었다. 퇴원은 보통 오전 11시에 한다고 해서 그 시간에 맞추어 퇴원 준비를 하였는데, 문제는 아이의 퇴원 가능 여부였다. 아이는 감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항생제 투여를 받고 있었지만 정확한 감염 여부는 검사 후 48시간 이후에 나오는데 그 검사 결과가 퇴원하는 날 오전 11시경에야 나오게 되는 거다. 그 결과에 따라 아이가 우리와 함께 퇴원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아이만 병원에 더 머물러야 하는지가 결정된다고 해서 우리는 퇴원 직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퇴원하는 날, 퇴원 준비를 하며 찍어본 회복실 내부의 사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은 밥.
퇴원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전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 간호사가 와서 아이도 함께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곧 의사가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의사를 기다렸는데, 의사의 말은 예상과 달리 조금 심각했다. 아이가 황달 증세가 조금 있어서 그 검사를 진행 중이니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무래도 전날 오전부터 모유수유를 시도했는데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서 아이가 뭘 먹질 못해서 그런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몇 시간 후 결과는 다행히 잘 나와서 역시 아이도 함께 퇴원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황달 증세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오전 10시부터 퇴원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퇴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간호사에게 카시트를 검사받고 아이와 함께 병실을 나와 남편이 꺼내놓은 차에 올라타려는데 밖에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가 크면, 아이가 퇴원하던 날 눈이 내렸었다는 얘기를 꼭 해줘야지, 생각했다.
아이는 퇴원과 동시에 담당 의사가 정해지고 내가 임신 기간 중 다녔던 병원의 소아과에서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자동으로 정기 검진 예약이 잡혔다는 알람이 왔다. 퇴원한 바로 다음 날, 출생 후 3일에 하는 체크업 예약과, 출생 2주 후 체크업, 그다음은 2개월, 4개월, 6개월, 9개월, 12개월 후에 받아야 할 체크업 예약까지가 모두 잡혀있었다. 그 이후로는 15개월, 18개월, 24개월에, 또 그 이후로는 매 1년마다 한 번씩 체크업을 가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아이의 2개월 체크업까지 받은 상태인데 임신 기간 중에도 느꼈던 것처럼 아이의 진료를 해주는 소아과의 서비스도 무척 마음에 든다.
지난 출산 후기 글에서도 쓴 것처럼 아이와 나의 병원비가 합쳐서 약 7천만 원 정도 청구가 되었는데 자세한 내역을 보면 아이의 케어 비용만 2천만 원 정도로 나와있다. 아이를 케어해준 것을 따지면 2박 3일 동안 기저귀를 갈아준 것과 처음 24시간 동안 매 세 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여주었던 것, 그리고 매 여섯 시간 간격으로 항생제를 투여해 준 것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 비용이 2천만 원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 이외의 큼지막한 청구 금액은 내 분만실과 회복실 이용비가 각 천만 원 정도씩, 그리고 IV therapy 비용이 또 약 천만 원 정도로 청구가 되어있다. 나머지, 편의 시설을 이용한 비용 (아마도 밥 먹은 걸 말하는 걸까..), 주사제와 경구투여제 등의 약품 비용, 각종 검사 비용 등이 남은 2천만 원 정도에 배정되어 있다.
출산 전에 병원에 가져가야 할 출산 가방을 어떻게 싸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한국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챙겨야 하지만 미국 병원에서는 필요한 걸 다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걸 챙길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던 게 사실.
내 경험에 미루어 볼 때, 병원에 머무르던 4박 5일 동안 내가 필요했던 것은 머리끈과 분만실에서 사용한 가글액, 그리고 회복실로 옮긴 후 사용한 양치 도구와 나중에 샤워할 때 필요했던 샤워 용품들 (바디워시, 샴푸, 린스, 얼굴에 바를 기초 화장품 등) 정도가 다였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퇴원할 때 입을 옷, 그리고 카시트가 전부다.
그 외의 것들은 병원에서 모두 제공해 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에게 필요한 기저귀, 아이가 병원에서 입을 옷들, 그리고 필요하다면 공갈젖꼭지도 제공해 준다. 나에게 제공되었던 것은 분만실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필요했던 일회용 속옷, 패드, 클렌징 바틀, 그리고 회음부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 회음부 패치와 그 위에 바를 약품들, 진통 완화 크림, 핫팩, 아이스팩 등등. 출산 이튿날부터는 간호사들이 좌욕을 하라고 성화였는데 좌욕기를 가져다주며 이건 집에 가져가서도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모유수유 시 유두 통증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라놀린 크림도 나는 필요가 없었는데도 따로 챙겨주었다.
퇴원할 때에는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를 조금 챙겨주어서 집에 가서도 한동안 병원에서 받아온 것을 사용할 수 있었고, 나에게 필요한 패드와 일회용 속옷, 클렌징 바틀, 회음부 패치와 약품들도 여분으로 챙겨주어서 집에 와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병원에서의 4박 5일간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드디어 아이는 우리 집에서 온전히 우리 품에 남게 되었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한 첫날밤의 두려움은 정말 엄청났다. 기저귀를 하나 가는 일도 서툴러서 벌벌 떨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우리같이 서툰 부모와 함께라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