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리, 팝 아티스트
A topping of your life, like a cherry on top!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태리워커(Tarry-worker)들의 마지막 한끗을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 같은 볼캡을 만듭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영감과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라이프 리프레시먼트 스테이션(Life Refreshment Station) 태리타운의 디렉터 오스틴이 다양한 분야의 태리워커를 만나 없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한, 얹었을 때 비로소 나를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최나리 / 팝 아티스트
인간이 욕망하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욕망 화가
학력: 성신여자대학교 박사
데뷔: 2009년 전시회 <Mato&Mayo-마토와 마요가 만나는 ‘사이’ 혹은 ‘관계’>
MBTI: (오스틴과 동일한) ENFJ
공식페이지: http://choinari.com/
SNS: https://www.instagram.com/nari1318
태리타운이 첫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볼캡으로 최나리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평소 내 말버릇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욕망과 결핍, 그리고 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해소가 된다는 이야길 하는 태리타운과 최나리 작가의 그림은 데칼코마니 같았기에.
그러나 볼캡이 완성되어 가는 와중에 어금니에 낀 시금치 같은 것이 내게 계속 남아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볼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나리 작가와 만나 한 번 더 이야길 나누고 싶었다.
오스틴: 나리님, 바쁘신데 너무 죄송해요. 오늘 몇 시간 못 주무셨다고…?
최나리: 목요일은 아침 강의가 있어서. 그리고 오후에는-
그가 오늘 스케줄을 읊어주는데 내 머릿속에는 이미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꽉 차 있어서 자동반사 같은 미안한 표정만 장착한 채 질문들을 구조화 하고 있었다.
마치 볼캡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과몰입 되어 있는 주화입마 같은 상태.
오스틴: 제가 지난 번에 나리님이랑 가볍게 티타임을 갖고는 혼란스러워졌어요. <DJ Mato>에서 제가 느낀 것과 나리님 사이에 간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 있다 보니 볼캡 마토를 완성하는 데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최나리: 음…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요? <DJ Mato>가 2012년 작품이니까. 저 작품을 그릴 때의 전 이십대를 마감하면서 갓 서른에 입문한 시기였고, 지금은 사십대가 되었으니 오스틴이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띵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갇혀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내뱉은 것만 같았기에.
최나리: 그런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부족했다고 느끼셨나요?
오스틴: <DJ Mato>는 클럽이 연상되는 즐거운 장소잖아요. 그런데 뭔가 어딘지 모르게 그림자가 있어요. 이 감정은 아마 나리님에게서 나온 것일 텐데-
마토라는 볼캡을 준비하면서 찜찜한 것을 그대로 두는 것보단 그를 더 이해하고 모자를 완성하고 싶었다.
오스틴: 일단 나리님은 자기소개를 하실 때 주로 어떤 키워드를 쓰세요?
최나리: 자기소개라… 아! 저는 ‘숨기려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냥 앞뒤가 똑같아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거짓말하면 바로 들키는 사람. 그게 바로 저예요. 그래서 웬만하면 안하죠, 거짓말을.
오스틴: 뭔지 알 것 같아요. 그게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거군요?
최나리: 맞아요. 큰 부분에도 반영되지만 작은 부분까지 그대로 투영돼요.
오스틴: 작은 부분이라고 하면요?
최나리: 모티브나 주제 의식 같은 큰 방향성 말고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집는 컬러가 달라요. 몸이 아플 때는 희한하게 자꾸 탁한 색을 쓰게 돼요. 작품에 따라서는 일부러 기분을 바꾸려고 노력을 하기도 해요. 음악도 바꿔 보고 커피도 내리면서 전환을 하는 거죠.
오스틴: 모든 컨디션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는 거군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이라… 재밌네요. 사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그 바탕에는 욕망이 끼어 있잖아요.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 또는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죠.
최나리: 동의해요! 제 작품도 그런 것들을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려고 하죠, 저라는 필터를 써서.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그의 일기장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그러면 이제 내 안에 낀 시금치 같은 녀석을 조심스레 꺼내야 할 타이밍이다.
오스틴: 나리님과 얘기하고 있으면 되게 유쾌해지고 괜히 더 업이 되고 그런데요. 작품에서는 문득문득 그 반대가 느껴져요. 색감도, 선도, 오브제들도 한없이 즐겁고 발랄한데 괜히 쓸쓸해요.
최나리: (소스라치듯 놀라며) 그런 걸 느끼셨어요?
거짓말 못하는 사람 맞네. 눈이 땡그래지니 아이 같은 귀여움이 불쑥 튀어 나온다.
최나리: 사실 제 안에서 어두운 면이 클 때는 아예 밖에 나오질 않아요. 조용히 작업실에 처박혀 있는 편이죠. 그런데 마냥 하이 텐션 상태로 있는 것보다 이런 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더 작업에 몰두하죠.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E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화가는 혼자 작업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제 안의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게 제 작업이에요.
오스틴: 예를 들면요?
최나리: 예전에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여름 장마로 비가 너무 처절하게 오는 거예요. 그래서 더 행복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나만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스틴도 봤군요.
오스틴: 작가님의 팬이라면 다들 눈치채지 않으셨을까요?
최나리: 하지만 그 행복이 가짜는 아니예요. 저는 진짜 그 작업을 하면서 정말 행복해졌거든요. 완성될 즈음엔 해소가 된 셈이죠.
유쾌한 그림 속에서 발견한 그림자는 단순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을 극복하고 성장해 내려는 그의 강력한 의지였고 치유와 해소의 과정이었던 것.
최나리: 송민호 씨 아시죠?
오스틴: 마이노?
최나리: 네, 쇼미에도 출연하셨던. 예전에 컬래버를 같이 했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울할 때의 자신이 너무 좋대요. 그 시간이 끝나면 얼마나 더 성장할 지 알아서. 그 얘기를 듣는데 박수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저도 10년 전에 딱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했거든요.
순간 소름이 확 올랐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얘기니까.
최나리: 아, 맞다! 오스틴도 약간 그런 과죠? 인스타그램 봤는데-
그가 내 계정을 본다고? 괜히 우쭐해진다.
최나리: 가끔 올리시는 글 보면 단호한 각오처럼 느껴져요. 불타고 있는 게 보여서 멋진 것 같아요.
오스틴: 맞아요. 저도 멘탈이 무너질 때 오히려 더 저를 다잡으려고 글을 써요.
성장에 목마른 변태(?)들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오스틴: 저는 글로 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치료제라기 보다는 진통제 같은 역할로만 머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리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보다 용기 있는 분 같아요. 본인의 그림자를 밝고 경쾌하게 풀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니까. 누구나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의 에너지 원천이 궁금해진다.
오스틴: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최나리: ENFJ인데-
그가 말을 이어 가려는데 다짜고짜 손바닥을 쫙 펴서 그녀의 얼굴 앞에 들이댔다. 찰진 하이파이브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실패
오스틴: 역시…! 제가 작가님 작품을 보자마자 빠졌던 이유가 있었군요. ENFJ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가 고비의 순간에도 미래를 낙관하죠. 이는 책임감이 강하기에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잘될 걸 알기에 참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거죠.
최나리: 오? 맞아요! 오스틴도 그러시군요?
오스틴: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야길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됐어요. 사람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으신 거죠?
최나리: 와… 들킨 기분이네요. 제가 예전부터 오지랖이 좀 넓었어요. 음지에 있는 애들을 꺼내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돕고 싶단 생각에 대화를 정말 많이 해요. 더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게.
오스틴: ENFJ들은 기버(giver)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나리님이랑 얘길하다 보니 그런 맥락이 툭툭 보이고요. 제가 모자 만들기 전에 원래 하던 업이 브랜딩, 그 중에서도 퍼스널 브랜딩이거든요. 대화하면서 직업병처럼 그 사람을 분석하는데, 나리님이 말할 때 기버들이 자주 쓰는 표현들을 쓰시더라고요.
퍼즐이 점점 풀려간다.
최나리: 화가로서의 저도 너무 좋지만 선생이라는 직업이 저한테는 천직 같아요. 아이들에게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다 알려주고 싶거든요.
오스틴: 경쟁자라고 생각하시는 교수님들도 있던데요? 아무래도 학교에서야 선생과 제자지만 필드에선 계급장이 없잖아요.
최나리: 그런 마음이 들면 선생을 하면 안되지 않을까요? 저희 작가들 중에서도 선생을 겹업하는 작가들끼리 대화할 때 그런 얘길 한 적 있어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우리가 갖춰야 하는 첫 번째는 실력이나 커리어가 아니라 ‘사랑’이라고요.
오스틴: 사, 사랑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가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늘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설 때의 묘한 설렘이 인터뷰의 백미가 아닐까!
최나리: 힘들어하는 이들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요. 연민일 수도 있고 동정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이 바탕에는 모두 사랑이 있다고 믿어요.
오스틴: 맹자의 측은지심이군요?
최나리: 그리고 이게 마음만으로 멈추진 않아요.
갑자기 그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최나리: 내 새끼들, 아니 죄송해요. 제자들이 자꾸 동생들 같아서 그만. 아무튼 얘네들이 작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좀 덜 고생했으면 하는 거죠. 내가 돌아갔던 그 길로 안 갔으면 하는?
오스틴: 하지만 그 길을 가야 또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게 아닐까요?
최나리: 맞아요. 그 터널을 뚫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줄 아니까…
내 새끼들이란 단어에서 그동안 맞춰지지 않았던 마지막 단서가 나왔다.
오스틴: 정말이지 제 뇌를 복사한 기분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가 있는데 거기 가사에 그런 게 나와요. “아~ 마음 속에 사랑이 없다면 슈퍼 영웅이 될 수 없네.”
최나리: 맞죠, 맞죠! 영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희생이잖아요. 사랑이 없으면 영웅이 아니죠.
오스틴: 그런데 사랑이란 게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잖아요. 나리님의 정의는 뭐예요?
최나리: 막 거창하게 말할 필요 없죠? 저는 심플해요. 주는 거,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걸 주는 것.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어요. 아까 제가 마음만으로는 뭔가 아쉽다고 했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전달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역시 그는 기버였다. 확신으로 가득찬 말 속에는 ‘땐땐한’ 사랑이 93% 담겨 있었다. 나머지는 그의 눈 속에 담겨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7%를 채우고 있었다.
최나리: 그러나 요즘은 받고 싶은 것이기도 해요. 주는 것도 주는 거지만 좀 받고 살아야 하는데-
머쓱 했는지 찡긋거린다.
오스틴: 나리님의 현재 욕망은 사랑을 받는 건가요?
최나리: 꿈이죠.
오스틴: …네?
최나리: 저는 욕망을 꿈과 결부시켜요. 꿈은 또 일상과 연결이 되고요. 결국 욕망은 일상의 또 다른 단면인 셈이죠.
친근한 이웃 같았던 그가 갑자기 아티스트가 됐다. 아, 물론 처음부터 그는 아티스트였지만.
오스틴: 갑자기 훅 어려워졌어요. 제가 잘 이해했나 보세요. 그러니까 나리님이 말하는 욕망은 일상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의 집합체 같은 건가요?
최나리: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욕망하는 것 자체가 꿈이란 생각이에요.
오스틴: 소망이나 희망, 열정 같은 단어들과는 사뭇 다른 데요?
최나리: 뭔가 그 단어들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더 근원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인간은 누구나 욕망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녀요.
오스틴: 더 원초적인 열망 같은 건가요?
최나리: 아까 말씀하신 소망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은 너무 순수해요. 현실적인 고민이 안 들어가 있어.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순수한 열망도 있지만 속물적인 열망도 내재되어 있잖아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는 욕망인 것 같아요. 조금 촌스럽게 들릴 순 있지만 대체 단어가 없는 것 같아요.
오스틴: 저에게 대입하면 태리타운의 성장이겠군요?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과 함께 매출을 올려서 부를 쌓고 싶은 마음까지 결합된!
최나리: 맞아요. 우리가 지금 나눈 것들은 또 결핍에서부터 나타나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동기니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오스틴: 스스로 결핍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들은 욕망이 없는 걸까요?
최나리: 없는 게 아니라 자각을 못하는 건 아닐까요?
3,000만큼 공감해. 뇌가 열리는 기분이다.
최나리: 결핍을 발견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해요. 결핍은 단순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니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인 것이죠.
스스로를 냉정하게 관찰한 결과물이 결핍이라니, 너무 신선한 접근이었다.
최나리: 아티스트는 이러한 결핍들을 포착하고 여기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고, 이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주는 사람 말이에요. 그리고 이러한 힘을 키우는 데 가장 많이 하는 훈련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결핍을 가졌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거였어요. 이러한 발견은 단순히 크리에이티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치죠.
오스틴: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거네요. 나와의 협상 같은 건가?
최나리: 오! 이게 제가 말한 자신만의 의미부여인 거죠. 같은 현상을 오스틴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거니까.
준비한 질문들이 더 많이 남았지만,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었다. 아니,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그러나 이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뒷부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날 샌드위치에 들어간 시금치가 더 선명할 정도.
에필로그.
요즘 협상을 할 일이 잦다. 회사 안에서 직원들과의 다양한 대화부터, 에이전시와의 미팅, 하다 못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협상이 아닌 것이 없다. 각자의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서 협상은 이뤄지기에.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협상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단순히 내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납득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해피엔딩 말이다. 그것이 설령 제로섬 게임일지라도.
최나리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해답을 발견한다. 바로 ‘욕망의 오픈’이다. 서로가 상대의 욕망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결과물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엔 방해물이 있다. 바로 의도를 숨기는 것. 내 패를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함께’는 없고, ‘나만의 승리’만 있다. 그 근본에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진 이기심도 작용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학습화된 습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개인들에게 욕망을 거세할 것을 추천했고, 밝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다. 겸손과 절제란 말로 포장된 이것을 우리는 공리(公理, axiom)처럼 믿고 받들어 왔다. 숨길수록, 감출수록 미덕으로 치부된 세상에 살다 보니 오히려 뒤틀린 양태들이 표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직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축적된 경직성은 결국 우리를 각자도생의 지대로 내몰았던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한다.
내가 바라는 것, 그것이 고매한 가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가장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공존을 위한 토대가 된다. 이는 내가 승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한 것이다. 최나리 작가가 말한 사랑이 바탕에 깔린다면 이는 훨씬 수월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