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수, 사격선수(전 축구선수)_1부
Think outside the box! 편견을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태리워커(Tarry-worker)들의 마지막 한끗을 (완벽과는 다른)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 같은 볼캡을 만드는 태리타운의 인터뷰 시리즈
태리타운의 디렉터가 캠페인 볼캡에 영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태리워커를 만나, 없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한, 얹었을 때 비로소 나를 완전하게 해주는 자신만의 토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연수 사격선수(전 축구선수)
교통사고 피해로 프로 데뷔 3년 만에 은퇴를 하게 된 K 리그의 팬들에겐 마음 한켠의 멍. 자칫 불행으로 끝났을 수 있는 인생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고 조금씩 단련해가며 자신의 두 팔로 스스로의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 가는 사격선수.
연차: (16년간의 축구 선수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이제 2년차 새내기
학력: 포항제출중 > 부평동중 > 부평고 > 호남대
MBTI: ESTP
SNS: https://www.instagram.com/_rys_31
e-mail: dbdustn57@naver.com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항공기 격납고를 모티브로 한 공간에서 유연수 선수를 만났다. 사격 선수로 재도약 하기 위해 날아 오를 준비를 하는 그를 만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
신영웅: 우리 얼마만이죠?
유연수: 인천에서 뵐 때 긴팔이었는데 벌써 반팔이니까…
4개월만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일상을 보기도 하고 틈틈이 서로 격려를 주고 받다 보니 오랜만이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
신영웅: 그나저나 본격적으로 훈련 시작한 것 같던데, 어때요?
유연수: 와… 말도 마세요. 그냥 땀범벅이에요. 예상했던 것보다 훈련량이 많아요. 게다가 팀 스포츠를 하다가 개인 스포츠를 하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 게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신영웅: 사격이 막 뛰는 운동도 아닌데도? 프로 선수까지 한 사람이 너무 엄살 떠는 거 아녜요?
유연수: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지난 번에는 제가 눈을 떴는데 갑자기-
드릉드릉. 그와 내가 오래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수다 시동을 걸 때는 이제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지금이 바로 그 때.
신영웅: 훈련 스케줄이 어떻게 돼요?
유연수: 일단 9시에 훈련을 시작해요. 스트레칭까지 마무리하고 사대(Firing line)에 들어서면 바로 사격을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이제 초보니까 30분 동안 자세 연습만 해요. 자세 잡고 총을 볼에 대고 조준선 보는 거죠. 그리고 다시 내렸다가 또 들었다가.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 훈련을 해요. 그래야 편안한 자세가 나오고 흔들임 없이 격발을 할 수 있으니까.
윽- 훈련소에서 사격 훈련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유연수: 10시쯤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격에 들어가요. 먼저 공격발(Dry fire)을 하면서 감을 익힌 후에 실탄 사격을 하죠.
신영웅: 실제 한 발을 쏘기 전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유연수: 안정적인 자세가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거죠. 좀 하다 보면 금방 점심 시간이에요. 오후 훈련은 오전 연습의 반복인데 하나 다른 게 있어요.
신영웅: 어떻게 달라져요?
유연수: 총 위에 모래 주머리를 올리죠. 그 상태로 5분 정도 사격 자세로 버티다가 3분 쉬고, 이거를 계속 반복해요. 이걸 1시간 정도 반복하면 이제 다시 사격을 하죠. 또 공격발부터 다시!
신영웅: 반복의 반복의 반복이네요.
유연수: 실력이 느는 데에는 반복만큼 중요한 게 없죠.
신영웅: 말만 들어도 뻐근하네. 얼추 5시쯤 끝나는 거네요. 그럼 하루 일과 끝?
유연수: 저녁 먹고 개인 운동 해야죠. 이때는 총 없이 웨이트 트레이닝만 해요.
신영웅: 안 그래도 지난 번보다 몸이 좋아진 것 같더라니!
유연수: 밤 9시 정도 되면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휴식에 들어가죠.
신영웅: 쉬는 것도 훈련 과정에 포함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유연수: 잘 쉬어야 또 내일 운동을 충실하게 할 수 있으니까.
끊임없는 반복이다. 솔직히 사격이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해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정적인 운동이다 보니 훈련보다는 재능이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 것.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럴 것인데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몇 장면만으로 쉽게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유연수: 어떤 면에선 축구보다 더 힘들어요. 축구는 시즌이 있잖아요. 오히려 시즌에는 하루에 한 번만 운동을 하거든요. 그것도 2시간 안 되게. 그런데 사격은 시즌, 비시즌 개념이 따로 없으니까 대회 당일이 아니면 매일 이렇게 훈련을 하죠. 매일이 시즌인 느낌이에요.
듣기만 해도 내 어깨가 뻐근해지는 훈련이다. 그러나 이미 그의 입가엔 미소가 넘쳐흐른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축구로 프로 선수가 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을 입증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런 훈련조차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신영웅: 사격으로 전향하고 루틴이나 징크스는 따로 없어요?
유연수: 아직 루틴을 만들거나 하진 않았어요. 시합을 많이 나간 게 아니니까 징크스 같은 것도 없고요.
운동선수라면 루틴이 없을 수가 없다. 다만 잘 밝히질 않을 뿐. 괜히 부정 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 나 역시 운동선수의 아들이지 않은가! 나의 아버지는 늘 왼쪽 신발부터 신어야 했다. 실수로라도 오른쪽을 먼저 신으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다시 입었다. 아니면 일진이 사납다나… 그의 루틴이자 징크스였다.
신영웅: 축구할 때도 없었어요?
유연수: 축구할 땐 있었어요. 주변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를 해요. 그리고 항상 경기 전에 성경을 읽고 나가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
신영웅: 요즘은 왜 없어요?
유연수: 이제는 최대한 안 만들려고 해요. 그 루틴에 내가 갇힐까봐.
그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대회에 나가고 하면서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이들은 대부분 루틴이나 징크스를 가진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했으니. 나머진 외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니까.
유연수: 아?! 루틴까진 아닌데 요즘 한숨을 많이 쉬어요. 특히 사격을 앞두고는 진짜 많이 쉬는 것 같아요.
신영웅: 한숨이요? 힘들어서…?
유연수: 힘을 빼려고요. 아직 사격은 서툴고 배워야 할 게 많다 보니 잘 안 풀리면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때가 많거든요.
신영웅: 뭔지 알 것 같아요. 사실 힘을 쓰는 운동일수록 힘을 잘 빼는 선수가 잘하는 거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유연수: 맞아요. 그런데 힘 빼는 게 제일 어려워요.
신영웅: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아무리 잘 맞아도 안타 밖에 안 나오는데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하면 공이 배트에 맞을 때 진짜 아무 감각이 없이 깨끗한데 그러면 딱 홈런이라고. 타자는 치는 순간 딱 안다고 하더라고요.
유연수: 그래서 요즘 일부러 사격을 하기 전에 한숨을 많이 쉬면서 몸에 힘도 빼고 머리도 맑게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칫 한숨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걱정에 대한 표현이거나, 누군가에 대한 경멸의 의미도 한숨을 쉬니까. 그래서인지 한숨을 쉬면 복이 나간다고도 믿는 이가 많다. 어렸을 때 한숨 쉰다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신영웅: 한숨 쉬면 사람들이 뭐라고 잔소리 하지 않아요? 그 왜~ 한숨 쉬면 복 나간다 같은 말들 많이 하잖아요.
유연수: 그런가요? 저는 집중력도 좋아지고 뭣보다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매일 한숨을 쉬지 않으면 운동을 할 수가 없을 정돈데요?
신영웅: 너무 신기해요. 원래 알고 있었어요?
질문 자체를 이해 못했다는 듯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만 되돌아왔다.
신영웅: 아, 한숨이요. 한숨의 장점!
유연수: 아~ 그건 몰랐어요. 그냥 한숨이 자연스럽게 나오길래.
신영웅: 우리가 한숨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거든요. 한숨을 쉬면 스트레스 진정 효과가 있어요. 피로의 원인이 활성 산소인데, 한숨을 쉬면 새롭게 들이마신 산소가 뇌에 공급되면서 부교감 신경이 우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원리거든요.
이런 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이다.
신영웅: 아… 사업 망하고 하도 힘들어서 찾아본 적이 있어요.
한숨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표정을 보면서 묘한 패배감과 동시에 기대감이 스친다. 그는 원리를 알아서 한다기 보다는 스스로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몸이 최적의 상태가 될 수 있게 찾아가는 본능! 그의 도전에 기대가 생기는 되는 순간이다.
신영웅: 이후론 저도 책상에 앉기 전에 크게 휴~ 하고 한숨을 쉬어요. 일종의 리추얼이죠. 오늘도 잘해보자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
유연수: 저도 비슷해요. 종목은 다르지만 아무래도 선출이니까 아무리 초보라도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신영웅: 우리 모두 한숨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네요.
한숨을 쉬는 건 어쩌면 인간의 방어적 본능 아닐까?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몸짓. 그래서 한숨과 불행을 연결시키게 됐겠지만 인과 관계가 바뀐 편견일 뿐이다. 무엇보다 한숨은 불행을 떨쳐내기 위한 적극적인 우리의 노력이다. 당신도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1부 끝. 2부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