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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빼놓고 살았던 11월의 끄트머리 정리

by 신영웅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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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년 동안 달려온 네이버 라운드업리그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일은 일대로 그대로 하면서 교육과 과제를 하느라 반년 동안 울면서 악착같이 달렸다. 제대로 된 IR 자료(물론 이게 제대로 만든 거란 얘긴 아님)란 걸 만들어 본 게 처음이다보니 막막함이 더했다. 정말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몸부림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쟁쟁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상까지. 1등을 못한 건 아쉽지만 다른 팀들 발표 보면서 끄덕일 수 밖에 없었음�

부끄럽지만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놓고 세바시가 된 상황. 경쟁에 참가했는데 다른 팀 발표를 보면서 필기를 했다. 놓친 것과 해야될 것을 정리했다.


콜라보 제안까지 받은 건 기분 좋은 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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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에 더 착용감이 뛰어난 모자를 만들기 위해 태리타운 전용 볼캡 블록을 만든 것. 감히 말하지만 국내 볼캡 브랜드 중에 패턴(철형)은 만들어도 블록(골)을 만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블로킹, 이른 바 골을 친다고 하는 과정은 모자 만들 때 최종 단계로 모자의 모양을 잡아주는 성형 작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모양을 잡는다는 건 시각적 결과물 보다는 촉각적 결과물에 가깝다. 착용감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에.


모자를 만들 때 봉제 과정에서 원단이 당겨지거나 뒤틀리면서 변형이 일어나기 쉬운데 블로킹을 통해 스팀으로 형태를 잡아준다. 이 과정이 중요한 건 모자는 다른 패션 아이템과 다르게 제작 결과물이 2D가 아닌 3D로 나오기 때문. 납작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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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모자의 패턴에 최적화된 전용 블록이 있는 건 브랜드의 디자인을 완성해주는 마지막 퍼즐이다. 내 디자인을 그림이 아닌 진짜 결과물로 만드는 데 전용 블록은 필수다.


공장의 한 켠에 태리타운 전용 블록이 당당하게 설치되어 있다. 이 일을 대하는 내 마음 가짐을 동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기에 없는 살림에도 제작을 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모자라는 타이틀은 아직이지만, 가장 편한 모자라는 타이틀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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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단어 2개를 붙였다. 제주, 그리고 트레바리. 드디어 제주에서 트레바리 클럽을 개설했고 첫 모임을 가졌다.


참여했던 멤버분들이 후기를 퍼트린 덕분인지 추가로 들어올 수 있냐는 문의도 들어왔다. 왤케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냐는 타박을 들을 정도. (나름 한다고 한 건데... 나를 파는 게 여전히 부끄럽고 어렵다.)


제주에서의 북클럽은 서울에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브랜드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의 삶과 일에 대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보니 더 내밀한 이야기가 나온 것.


+

이 혼돈의 시간에 묵묵히 옆에서 함께 해준 아내, 든든한 동료지만 매일 퇴사를 꿈꾸는 그녀에게 고맙단 얘기와 함께 다짐을 이렇게 길게 쓴 뒤에 남긴다. 내 글이 길다고 안 읽는 사람이라 못 볼 확률이 높음ㅎㅎㅎㅎㅎㅎㅎ


예전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탓에 매일 미안하다고 할 때면 제주에서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괜찮다고 해주는 아내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매일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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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만들어가며 외롭고 지치기도 하지만 힘이 되어주는 아내가 곁에 있어 외롭지만 든든한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그녀를 위해서 제주의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천리향과 만리향 가득한 정원을 꼭 만들어 주고 싶다. 아내가 어릴 때 추억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그녀만의 정원을 언제가 될지는 모른지만 죽기 전에는 만들어 주고자 한다. 또 쓸데없이 숙제를 스스로 만든다고 뭐라하겠지만.


25년이 어느 덧 끝으로 다다른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못해 한 발은 냉탕에, 다른 한 발은 온탕에 담긴 듯한 상태.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이 오묘한 감정에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이럴 때는 터널의 끝을 기다리기 보다는 터널 안에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또 버텨봅시다. 버티다보면 또 산타가 우리를 찾아올테니, 울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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