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 반년 동안 달려온 네이버 라운드업리그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일은 일대로 그대로 하면서 교육과 과제를 하느라 반년 동안 울면서 악착같이 달렸다. 제대로 된 IR 자료(물론 이게 제대로 만든 거란 얘긴 아님)란 걸 만들어 본 게 처음이다보니 막막함이 더했다. 정말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몸부림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쟁쟁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상까지. 1등을 못한 건 아쉽지만 다른 팀들 발표 보면서 끄덕일 수 밖에 없었음�
부끄럽지만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놓고 세바시가 된 상황. 경쟁에 참가했는데 다른 팀 발표를 보면서 필기를 했다. 놓친 것과 해야될 것을 정리했다.
콜라보 제안까지 받은 건 기분 좋은 덤�
# 2
없는 살림에 더 착용감이 뛰어난 모자를 만들기 위해 태리타운 전용 볼캡 블록을 만든 것. 감히 말하지만 국내 볼캡 브랜드 중에 패턴(철형)은 만들어도 블록(골)을 만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블로킹, 이른 바 골을 친다고 하는 과정은 모자 만들 때 최종 단계로 모자의 모양을 잡아주는 성형 작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모양을 잡는다는 건 시각적 결과물 보다는 촉각적 결과물에 가깝다. 착용감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에.
모자를 만들 때 봉제 과정에서 원단이 당겨지거나 뒤틀리면서 변형이 일어나기 쉬운데 블로킹을 통해 스팀으로 형태를 잡아준다. 이 과정이 중요한 건 모자는 다른 패션 아이템과 다르게 제작 결과물이 2D가 아닌 3D로 나오기 때문. 납작하지 않다.
그렇기에 모자의 패턴에 최적화된 전용 블록이 있는 건 브랜드의 디자인을 완성해주는 마지막 퍼즐이다. 내 디자인을 그림이 아닌 진짜 결과물로 만드는 데 전용 블록은 필수다.
공장의 한 켠에 태리타운 전용 블록이 당당하게 설치되어 있다. 이 일을 대하는 내 마음 가짐을 동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기에 없는 살림에도 제작을 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모자라는 타이틀은 아직이지만, 가장 편한 모자라는 타이틀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 3
내가 좋아하는 단어 2개를 붙였다. 제주, 그리고 트레바리. 드디어 제주에서 트레바리 클럽을 개설했고 첫 모임을 가졌다.
참여했던 멤버분들이 후기를 퍼트린 덕분인지 추가로 들어올 수 있냐는 문의도 들어왔다. 왤케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냐는 타박을 들을 정도. (나름 한다고 한 건데... 나를 파는 게 여전히 부끄럽고 어렵다.)
제주에서의 북클럽은 서울에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브랜드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의 삶과 일에 대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보니 더 내밀한 이야기가 나온 것.
+
이 혼돈의 시간에 묵묵히 옆에서 함께 해준 아내, 든든한 동료지만 매일 퇴사를 꿈꾸는 그녀에게 고맙단 얘기와 함께 다짐을 이렇게 길게 쓴 뒤에 남긴다. 내 글이 길다고 안 읽는 사람이라 못 볼 확률이 높음ㅎㅎㅎㅎㅎㅎㅎ
예전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탓에 매일 미안하다고 할 때면 제주에서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괜찮다고 해주는 아내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매일 나아가고 있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외롭고 지치기도 하지만 힘이 되어주는 아내가 곁에 있어 외롭지만 든든한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그녀를 위해서 제주의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천리향과 만리향 가득한 정원을 꼭 만들어 주고 싶다. 아내가 어릴 때 추억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그녀만의 정원을 언제가 될지는 모른지만 죽기 전에는 만들어 주고자 한다. 또 쓸데없이 숙제를 스스로 만든다고 뭐라하겠지만.
25년이 어느 덧 끝으로 다다른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못해 한 발은 냉탕에, 다른 한 발은 온탕에 담긴 듯한 상태.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이 오묘한 감정에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이럴 때는 터널의 끝을 기다리기 보다는 터널 안에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또 버텨봅시다. 버티다보면 또 산타가 우리를 찾아올테니, 울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