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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12. 2019

영업, 곰장어로 배웠어요

그렇게 향한 곳은 회사 근처에 있는 곰장어집. 알고 보니 한 자리에서 수십 년간 영업을 한 동네 맛집이라고 한다. 겉보기엔 허름해도 그 맛이 진국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나서부터는 '아아 여기 끼어도 되는 걸까...' 하는 부담감이 그저 기쁨으로 바뀌었다.

명언...

그렇게 걸어가는 길에 한 분이 툭 말을 던지신다.

친구는 학교 어디 나왔어요?

아, 저는 OO대학교 나왔습니다!

OO대학교... 어???? 김철수(가명) 알아???? 그 친구가 나랑 기계과 같이 나온 동문인데 말이야, 우리가 같이 산악회도 하고, 아 김철수 나한테 돈도 빌려갔는데 하하하하!!!! 거 전화번호 혹시 아는가!!

아...니 이런 인연이...! 제가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그렇다. 학교 기계과 교수님이 고문과 같은 대학 동문에다 엄청난 절친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타 학과라 그 교수님의 수업 한 번 들어보지 않았지만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반갑다 친구야! 를 시전하시는 그분을 못 본체 할 수가 없었다. 황급히 '긴급! 김철수 교수님 폰번호 아는 사람!'이라고 메신저 단톡방에 뿌려댔고, 곰장어 집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지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정인 무슨 일이야? 김철수 교수님 010-1234-5678!'이란 반가운 메시지가 화면에 떠오른다.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여기 있습니다! 하고 번호를 넘겨주었고 전화 신호가 뚜루루, 뚜루루, 툭!

여보세요? 하는 중후한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다.


야, 김철수!!! 와하하하하!!! 나 OOO다!!!


첫마디가 야, 김철수라니! 진짜 오랜 친구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막역한 인사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함께 와하하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곰장어는 노릇노릇 익어갔고, 본격적인 일 이야기가 등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영업 이야기.


술을 먹어야 영업을 하지! 하는 사람과, 술 안 먹어도 영업 하지! 대신 분위기는 맞춰야지! 하는 사람. 근데 술을 먹어야 분위기를 맞추지! 하는 또 다른 사람. 그분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큭큭 웃음이 새어 나와서 애꿎은 곰장어를 입에 채워 넣었다. 그러다 "정인씨, 영업에서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하는 돌발 질문이 들어왔다. 주먹만 한 쌈을 입에 넣었던 터라,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영업을 하려면 말이야."하고 답을 주신다.



메모

어떠한 상황에서든 메모하라. 펜과 노트를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라.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면 리액션뿐 아니라 중요한 말을 할 때 그 말을 받아 적어라. 종이가 없으면 손에라도 적고, 그것도 안되면 메모하는 척이라도 해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라


각인

발굴하고 싶은 고객이 있다면, 계속해서 찾아가고 문을 두드려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후한 것이 밥 인심이다. 점심시간쯤 찾아가서 '밥 한 끼 하시죠.' 하면 쉬이 거절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만난 사람에게 영업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는 것. 사는 얘기, 회사 얘기 등 잊을만하면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대화’하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가 무언가 필요로 할 때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찾게 될 것이다.


감동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감동을 주라. 예를 들어서 가족의 생일, 자녀의 시험 등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 하는 것을 챙겨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감동을 주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고객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발견하라.



듣다 보니 영업을 잘하기 위한 이 세 가지의 방법들이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적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진심 어린 관심을 기울이고, 예기치 못한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것.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나를 존중해줘, 나를 인정해줘'라는 메아리는 내 앞에 앉아있는 상대방 또한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속삭임을 깡그리 묻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라고 모두가 외치는 세상에서 '그래, 네가 중요해'라며 쑥 들어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곰장어집을 나서는 길에 고문 한 분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이구 저번에 왔을 때, 잘생긴 아드님 계셨는데 오늘은 어디 갔어요?"

"아무리 먹어도 여기 곰장어가 최고라니까."

"쉬엄쉬엄 오래 장사해요. 손목도 안 좋은데 무리하지 말고. 하하하"


배불리 먹은 곰장어 때문인지, 쾌활하게 울리는 주인아주머니의 웃음소리 때문인지 나도 괜스레 웃음이 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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