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작년 10월에 열흘 정도 노르웨이를 다녀왔다.
마침 노르웨이에 친구네 커플이 있어서 큰 고민 없이 오슬로행 티켓을 끊었다. 전쟁 때문에 비행 스케줄이 바뀌어서 표를 다시 사는 정도의 작은 해프닝은 있었지만, 무려 마이너스 연차까지 당겨서 다녀온 노르웨이는 하루하루가 황홀했다.
이번 여행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는 로포텐 제도 여행이었다. 오슬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로프텐 제도는 노르웨이 사람들도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이먼과 나타샤가 우릴 픽업하러 기다리고 있었다. 무려 집에서 3~4시간이나 운전해와 준 것도 감동이었는데, 짠 하고 여는 트렁크 안 가득 찬 와인과 맥주는 마치 프러포즈받는 기분이었다.
이틀 밤을 아래 사진 속 노란 캐빈에 머물렀다.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호수와 설산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체크아웃하는 마지막 날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는데,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서 한참을 서성였다.
첫날 캐빈으로 향하는 길에 장을 봤는데, 노르웨이에 온 만큼 연어를 샀다. 나타샤와 야채를 잘게 썰고 연어를 손질해서 오븐에 구워내는 동안 두 남자들은 사이먼의 이름과 연어(Salmon)의 발음이 비슷하다며 키득댔다. 아이 같은 모습에 같이 웃었다.
따뜻한 캐빈에서 갓 구워낸 연어에 와인을 곁들이니 나른해졌다. 2018년 이후 처음 만났기에 서로 업데이트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도 사이먼과 나타샤는 오로라 강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을 거의 1분에 한 번씩 들여다보았다. 하루 온종일 운전을 하며 우리를 데리고 다닌다고 분명 꽤나 피곤했을 텐데도 꼭 우리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다며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보일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고 신이 난 그네들을 따라서 얼른 겉옷을 껴입고 데크로 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헤도 구름이 꽉 끼어 있었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마지 무대의 막이 오르듯, 구름은 멀어지고 그 사이로 초록의 오로라가 흔들거렸다.
오로라를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기분은 뭐랄까, 모든 것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 속엔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지, 그에 비해 나의 걱정이나 불안은 얼마나 자그마한 것인지. 고요한 밤에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듯한 일렁임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여쁜 이 세상 속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답게, 오로라와 함께 한 로포텐에서의 첫날밤은 참으로 안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