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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an 28. 2024

선물같은 그런 날이 있다

아주 가끔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선물을 받곤 한다.

수줍게 다가와서 '두 분 모습이 예뻐서 찍었어요' 하며 내미는 우리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그것이다.


놀라는 것도 잠시, 감사와 행복이 밀려온다.

돌아서면 곧장 잊힐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어여삐 보아주고, 그 모습을 담아 내밀어주는 그 마음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멋진 이벤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2018년 쿠알라룸푸르
2023년 인천 솔찬공원

얼마 전 이탈리아 여행 중 '세체다(Seceda)'란 곳을 올랐다. 보고 있자면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어마어마한 풍경 속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던 차였다. 널찍한 들에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었다. 1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아기와 함께 여행을 온 여성분이었다. 방긋방긋 웃는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기 엄마는 그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빠, 너무 보기 좋다. 그치" 하고 샌드위치를 베어 물다가, 문득 내가 받았던 그 행복,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받았던 선물을 이번에 내가 주고 싶었다. 


셔터를 몇 번 누르지도 않았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의 세상 속에서 그 둘만 있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자그마한 액정 밖으로 넘쳐흘렀다. 막막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가, 넌 모르겠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너의 엄마가 널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찍긴 찍었는데 이제 건네줄 차례다. 사진을 건네주기 전에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몰래 찍었다고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당황하진 않을까, 안 받겠다고 하면 그 앞에서 지워야 하나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우리에게 사진을 준 그분들도 이런 쿵쾅거림을 안고 우리에게 다가왔겠지 싶었다. 뭐, 그렇게까지 싫어하겠어하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실례지만 당신과 아기가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어요, 원하신다면 바로 드릴게요."


잠깐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정말 정말 정말 환한 그 웃음이 잊히지 않는다.

안 그래도 아기와 둘이 여행하며 둘의 사진을 남기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고맙다고, 완벽하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까지 행복에 물들었다.

나도 그녀도, 그리고 이전에 내게 선물을 안겨줬던 그네들과도 아마 앞으로 인생에서 다시 마주칠 일은 희박할 것이다. 다만 이 자그마한 따뜻함이 우리의 맘 한 귀퉁이에 아주 작은 반짝임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 그건 참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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