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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페코 Apr 08. 2021

유리살림

페코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짧은 글 06.

지난 주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생활용품 편집샵에 들러 커피잔 세트를 샀다. 손잡이가 달린 원통형 모양의 컵과 그것을 받칠 수 있는 평평한 컵받침은 모두 유리로 된 것이었다. 얇은 유리로 만들어진 커피잔이 무척이나 가볍고 매끈해서 마음이 꽤 흡족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잔을 씻어 말려 그릇장에 넣으려 봤더니 그간 유리살림이 꽤 많이 늘어있었다. 커피나 주스 같은 액체류를 담아내는 컵 종류가 대부분이었지만, 무언가를 섞거나 개는데 사용하는 보울 종류도 몇 개 있었다. 과일이나 쿠키를 얹어낼 수 있는 접시와 요리할 때 쓰는 계량컵도 전부 유리로 된 것들. 그러고 보니 잼과 장아찌류를 담아내는 밀폐용기와 술병으로 쓰는 피처 모두가 유리살림이었구나.


어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릇장 안 유리살림 전부 색이 없는 무색투명한 것들뿐이다. 색이 들어있는 유리살림이 하나도 없다니. “내가 이토록 무색의 맑고 투명한 것을 좋아했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었을 정도. 무의식적 끌림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취향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사실 유리 제품에 관심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두어 해 전 우연히 블로잉 기법(액화상태의 유리를 파이프 끝에 말아 입으로 직접 불어 모양을 만드는 유리가공 방법)으로 만들어진 유리제품에 빠져 몇몇 제품을 구입한 이후 유리살림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찰나의 부풀림으로 제각각 다른 모양이 만들어지는 블로잉 유리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유리제품과는 비교도할 수 없는 멋을 지니고 있었고, 난생 처음 유리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살림의 매력은 무엇보다 속을 훤히 비춰볼 수 있는 투명함에 있다. 무색투명한 용기에 어떤 것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여러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 아름답다. 여기에 더해 내가 꼽는 유리살림의 매력은 다름 아닌 (유리의 단점이기도 한) 잘 깨지는 성질을 지녔다는 것. 유리는 함부로 다루면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까닭에 모두에게 자신을 소중히 다뤄줄 것을 당당히 요구하고, 누군가의 부주의로 깨져버린 경우 자신을 함부로 다룬 이에게 마지막까지 앙칼진 뾰족함으로 응수를 한다. 이토록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빛나는 살림살이가 또 있을까.


시인 김소연은 책 『마음사전』의 시작을 유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가리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던 시인의 헤아림으로 무색투명한 유리살림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리살림은 함부로 다룰 수 없어 소중하다. 유리살림은 가린 듯 그 안을 훤히 볼 수 있어 진실하다. 유리살림은 티끌 하나 없는 재료의 투명함이 있어 근사하다.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 유리살림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를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end-




@mrs.p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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