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 Michael’s Mount)는 영국 남서부 콘월 지역에 위치한 땅끝 마을 팬잔스(Panzans)에 맞닿은 작은 섬이다. 하루에 한 번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보통은 육지에서 배를 타고 간다. 프랑스의 몽쉘 미셀과 이름과 지형이 상당히 유사한데 섬 언덕에 있는 이곳 건축물도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수도원으로 쓰였다.
왕이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공작, 백작들에게 후사되었고 1659년 존 대령(Colonel John St. Aubyn)이 구입해 거주하다가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그 후, 400년 동안 그 가문의 스위트 홈이었고, 2차 세계 대전에는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
1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교시설, 귀족의 소유지, 개인의 주거지였던 이곳은 1954년 후손 프란시스 세실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면서 이제 모든 이들의 유산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란시스는 999년 동안 자신의 후손들이 레지던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해 지금도 가족들이 가끔씩 찾아와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그들이 머무는 동안을 제외하면 내셔널 트러스트 멤버에게는 무료, 일반인에게 유료로 공개된다.
이런 스토리를 들으면 한없이 부러워지는데, 남겨진 재물이나 재산이 그렇다기보다 (물론 그런 유산을 물려받는다면 절대 마다하진 않겠다만) 남겨준 이들, 남겨진 것들, 물려받은 이들, 보존되고 지키는 것들, 모두 현재라는 시간에 공존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마저 온전히 함께 누리는 것 같아서다.
이런 영국이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일종의 어떤 결핍이나 상실감을 느낀다. 내가 태어난 서울 어느 언덕 마을은 대규모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곳은 이제 고층 아파트뿐이다. 우리 엄마 고향집은 도로가 들어서면서 철거되었고, 친할머니 살던 시골 초가집도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버렸다.
15년 동안 노마드처럼 이곳저곳 정착지를 옮기며 잘 적응하고 있지만 가끔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