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얼마 전 파주 평화를품은집에서 ’일상 속 차별어 점검하기‘ 강연을 들었다. 우리나라 토종 밀 종류 중 하나인 ‘앉은뱅이밀’은 다른 밀보다 길이가 짧아 앉은뱅이로 이름 붙였지만, 이 표현은 하반신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강의 말미에 차별어를 어떤 말로 바꿔 쓸 수 있을지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원래 이름인데 어떻게 바꾸지? 바꿔도 되나?’ 하면서 끝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진주 와서 숙소 근처 골목을 걷다가 ‘앉은키밀’을 사용한 에그타르트 카페를 발견했다. 진주가 앉은키밀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이었다. 검색해 보니 앉은키밀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찰칵!
계속 써온 표현이 익숙하다고 해서 생각 없이 계속 쓰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은 없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겠다. 분명 더 좋은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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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원주에 왔을 때 서울이랑 멀어지는 것보다 다른 지역과 더 가까워진다는 느낌이었다. 원주는 충주, 제천, 횡성, 여주 등 여러 지역과 둘러쌓여 있어서 차로 30분만 나가도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게 지금은 당연한 일인데 버스나 지하철로 한 시간을 넘게 가도, 차로 1시간을 가도 계속 서울만 맴돌았던 내게 원주에서 넘는 지역의 경계는 마음의 경계 넘기와 같았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진주 오니 다른 지역의 경계를 또 넘어간다. 바다를 보고 싶으면 사천이나 통영을 가면 되고, 남해도 갈 수 있다. 탈서울을 하면 지역의 경계가 또렷해지기도 하지만 언제고 넘을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나는 어디서든 살 수 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잠깐 대구에 왔다. 오오극장에 와서 <진주의 진주>를 관람했다. 월요일부터 다녔던 여러 장소가 익숙하다. 진주역부터 문갤러리 카페, 진주성 촉석루, 남강 등등.
주인공 진주는 영화감독이다. 오래 글을 쓰지 못하고 멈췄는데, 아빠가 작업하던 카페를 발견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그곳에서 촬영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철거 현장을 목격한다. 일주일 뒤면 촬영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선배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았더니 꼭 맞는 곳이 있다고 소개해준 곳이 바로 또 ‘진주’였다. 그렇게 찾아가게 된 삼각지 다방은 50년 동안 지역 예술가들이 모인 곳이었다. 켜켜이 그 흔적과 시간이 쌓인 장소가 다시 철거의 위기에 빠지자 진주는 철거 반대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예술가와 다방 주인, 지역 사이에서 진주는 영화 촬영이 아니라 더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대구에서 진주를 보고, 진주에서 원주가 떠오른다. 진주와 진주를 보면서 아카데미 극장 생각이 난다. 우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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