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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아 Mar 21. 2022

다만 이 순간만큼은 구하소서!

살면서 여러 여행을 가겠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신혼여행이 아닐까? 나에게도 물론 신혼여행이 첫 번째이다. 그 의미는 다르지만...     


신혼여행지는 런던과 파리였다. 먼저 인천에서 파리로 간 후, 바로 환승하여 런던으로 가서 4일을 묵고 다시 파리로 와서 7일을 여행한 후 귀국하는 코스였다. 여행의 일정과 예약을 아내가 다 맡았다. 아내가 평소 여행을 즐겼고, 나는 여행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능력을 고려한 업무분담이었다. 아내가 프랑스 항공사 표를 끊었는데, 코드쉐어로 우리나라 국적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국적기를 바로 구매하는 비용보다 훨씬 쌌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정보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 당일 아내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편안한 옷을 입자고 했다. 그렇게 트레이닝 복을 입고 우리는 출국 심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코드 쉐어는 2개의 항공사가 한 비행기를 공유하여 가는 것이다. 탑승을 하려고 직원에게 우리가 구매한 프랑스 항공사 티켓을 보여주었는데, 좌석이 각자 다른 곳으로 배정되었다. 직원에게 신혼여행을 가는 부부인데 옆자리로 좌석 배정을 부탁하였으나 어쩔 수 없다고 했다. 10시간 정도를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며 불편한 여행을 했다. 아마 이게 불길한 기운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긴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우리는 파리에 도착하여, 1시간 뒤 바로 런던으로 이동했다. 런던에 도착하자 드디어 우리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입국심사를 하고 캐리어를 찾는 곳으로 갔다. 이동 벨트에서 하나둘씩 캐리어를 뱉어냈다. 꽤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은데, 우리 캐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동 벨트 위에 새로운 캐리어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자, 무언가 잘 못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런던의 히드로 공항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한 단 말인가?      


아내는 나를 재촉했다. 영어가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물어보기로 했다. 직원으로 보이는 덩치가 큰 백인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익스큐즈미~’로 말을 걸었다. 역시나 서비스는 한국이 최고였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나라였으면 밝은 미소와 함께 ‘네 고객님~“이라는 말로 나의 곤궁을 해결해 주고 이런 불편에 대해 민원을 제기 안 하는 내 모습에 고마워했을 텐데, 이 히드로 공항 직원은 ’왜 귀찮게 영어도 못 하는 아시아인이 말을 거냐‘라는 눈빛이었다. 어쨌든 상황을 설명했다. 1시간 전에 파리에서 왔는데, 내 캐리어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 직원이 티켓을 확인하더니, 아주 쿨하게 안 왔다고 했다. 안 왔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더니 여행용 키트(간단한 세면도구)를 주면서 호텔의 주소를 적고 가란다. 그럼 내일 그쪽으로 갖다주겠다고 했다. 


이 대화를 할 때, 직원과 아내와 내가 삼각 구도로 있었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아직 오지 않았고, 주소를 적으면 내일 보내주겠다고.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앞에 있는 직원이 아니라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직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니까. 이런 일이 많다고 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많이 발생한대 라고 전하니, 말이 되냐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는 전달하지 않았다. 직원의 표정을 보니 다 알아듣는 눈치였다. 물론 아내도 토익세대라 그 직원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 둘은 대화하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자식을 사이에 두고, ‘엄마에게 전해라, 아빠에게 전해라’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공항을 나와 우리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런던 거리를 누볐다. 한때 세계 관광지를 T.P.O에 맞지 않게 등산복으로 점령한 한국인 관광객에 대해 폄하 조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한 관광객이었다. 다음날 관광을 하면서도 아내는 짐이 제대로 올까 걱정이 많았다. 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긴장되었다. 다행히 곧 내가 자국민이 아니란 걸 알고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내용은 같았다. ‘걱정하지 마라, 호텔로 보내줄 거다.’      


아내는 이 말을 들어도 좀처럼 걱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구경을 해야 했다. 일정대로 움직였고 사진도 찍었다. 사진마다 배경은 런던의 유명 관광지인데 옷차림은 집 앞 슈퍼였다.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왔다. 두근두근했다. 만약 캐리어가 오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호텔 로비로 가서 혹시 캐리어 온 것이 있냐고 물으니, 보관 장소에서 우리 캐리어 2개를 꺼내 주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다.      


또 한 번의 고비는 파리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대학 때 배낭여행을 통해서 파리를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처음이었다. 예전부터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고 싶었다. 학생 때 교과서로만 본 모나리자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아내는 이미 본 곳이라 그렇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을 보러 가기로 한 날, 오전에 아내가 갖고 싶었던 핸드백을 사고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프랑스 브랜드라서 현지에서 사는 게 싸다고 했다. 길을 물어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중국인 손님들이 많았다.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제품을 어떤 중국인이 들고 거울에 비춰 보고 있었다. 옆에는 이미 구매한 여러 개의 쇼핑백이 있었다. 중국 부자가 진짜 부자라더니, 또 쇼핑백이 추가되었다. 그리곤 그게 그 모델의 마지막 제품이었다. 점원이 다른 매장을 알려 주었다. 프랑스답게 대문호 ‘빅토르 위고’ 매장인가 그랬다. 또 발품을 팔고 묻고 물어 매장을 찾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행히 그 매장엔 있었다. 구매하려고 하니 우리 카드로 결제가 안 된다고 했다. 현금으로 사야 했다. 우리가 소지한 카드로 현금 인출이 가능한 곳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어느 백화점에 있는 ATM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또 길을 물어 백화점에 도착해서 현금 인출을 했다. 다시 ‘빅토르 위고’ 점으로 가서, 핸드백을 구매했다. 그렇게 핸드백 구매 대장정이 끝났다. 

      

루브르 박물관을 가려고 하자 이미 시간이 꽤 지났다. 잠시 들러 사고 가려고 한 것이 그날의 메인 일정이 되어버렸다. 나는 화가 났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느 순간 인내의 선이 끊어져 다투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이가, 제일 먼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마 이런 경우가 여행에서 최악이 아닐까 한다. 좋게 놀러 가서는 싸우는 경우.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경험. 그 순간을 우리는 신혼여행지 루브르 박물관에서 겪었다.      


그 후 우리는 화해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잘 보내고 돌아왔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실패한 신혼여행이었다. 지금에서 다시 돌아간다면 싸우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가정법은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다행히 다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한 번은 우연히 일본 교토에서 신혼여행에서의 우리를 보았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갑자기 한국말이 크게 들렸다. 젊은 커플이 싸우고 있었다. 교토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관광지여서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모여있었다. 사연은 모르지만, 여자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화를 내며 남자친구의 등을 여러 번 때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남자의 반응에 쏠렸다. 남자는 그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 같다. 화를 참는 표정을 짓더니 혼자 가 버렸다. 이제는 시선이 여자에게로 모였다. 여자는 자기가 화를 내면 남자가 미안하다고 다독여 줄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단둘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미련한 자존심의 동물이다. 남자는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도망가고 싶었으리라. 익숙지도 않은 길을 남자는 뒤도 보지 않고 빠르게 걸어갔다. 여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황망히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우리가 저랬을까? 그들도 이제는 그때를 추억하고 있을까?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순간. 그 순간들이 꼭 찾아온다. 가족여행 날 엄마가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출발이 늦어져 차에서 기다리던 아빠와 싸움이 나고, 공항에 도착하고야 여권을 빠뜨린 것을 알게 되고...

행복을 시기하는 신이 있는 걸까? 그 신에게 빌고 싶다. 요즘 흥행하고 있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모든 행운이 충만해야 할 여행에서는 ‘다만 이 순간만큼은 구하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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