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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Nov 20. 2019

사장님, 일은 언제쯤 할까요?

일이 없는 공장은 적막강산

공장에서의 일을 기록하겠다,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을 했건만, 오래도록 글을 시작도 못했다. 그 이유는 요즘 공장에 일거리가 없어서이다. 이게 요즘 회사에서의 큰 걱정거리다. 정확히는 일이 없으면 실업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걱정이다. 일감이 없으니 들리는 건 사장님의 (한)숨소리뿐. 흠.. 내 잘못은 아니지만, 뭔가 좀 찝찝하고 불안하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도 한 한두 달 정도는 공장에서 일하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 챡, 쿵쿵 챡, 하는 규칙적인 절단과 두드림의 쇳소리. 그 어떤 메트로놈 보다 정확한 박자를 내는 쇳소리. 철강제조 공장에서의 큰소리는 기본 옵션이다. 제품이 되는 재료도 쇳덩이이고, 그 재료를 다루는 기구들도 쇠이니 소리는 필연적이다. 쇠를 두들기고, 절단하고, 용접해서 붙이는 모든 과정에 다양한 데시벨의 소리들이 들린다. 지금이야 이 소리에 적응해 가고 있고, 또 나름 소리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물론 그 방법이라는 게 귀마개가 전부이긴 하지만.


허나, 처음 공장에 출근했을 땐 이 소리들을 계속 듣는 게 힘들었다. 공장에서 일하기 전까진 책을 파먹고 사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을뿐더러, 신경이 쓰이는 소리는 무조건 소음 취급, 차단의 대상이었다. 한창 예민할 땐 도서관에서 누가 조금만 소리만 내어도 관심법을 발동하던 사람이 나였다. 그렇다고 막 경고성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그런 사람은 아니다(그냥 가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10월에 들어서부턴 그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한동안은 쿵쿵거리는 쇳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좋았다. 소리 때문에 대화 소리(라 쓰고 사장님 오더라고 읽는다)도 잘 들리지 않고, 또 집중을 하는 데에도 거슬렸으니 이 소리가 좋을 리가 있나. 그런데 그 소리가 안 들리니, 평화가 따로 없다. 게다가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사무실에서도 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실은 사무실에서 일을 만들어 현장으로 토스해야 한다)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내 개인적 용무를 볼 수도 있으니 좋지 아니하겠나.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월급루팡'을 내가 하고 있다니+_+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비롯해 사무실 사람들 모두 각자 개인적 용무(라고 해보았자 모두 핸드폰)를 보았고, 나도 평소에 미뤄두었던 책을 읽으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가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니 슬금슬금 불안하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월급이 삭감당하진 않겠지만(아직 최저시급이라 깎일 월급이 없기도 하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과연 난 실직당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생겼다.


오랜동안 일이 없어서 월급 루팡인 신세로 사장님과 한 공간에 있으려니 참 답답하고 불편하고 그렇다. 딱히 사장님이 일이 없다고 영업사원을 들볶거나 현장 직원들에게 눈치 주고 그런 건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참 갑갑한 노릇이다. 매일 사장님의 눈치를 살피고,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게 업무가 되어버렸다. 아.. 캐드가 아니라 차라리 용접을 배울 걸. 


공장이라는 것이 원래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한 것이기에, 호황기엔 공장의 일도 많고, 불황기엔 일이 적고, 또 그게 심해지면 도산하고..(잠시 침묵... 아.. 슬퍼) 그런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공장에도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부산경남 지역의 상장 회사들의 매출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공장의 일감이 주는 건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걸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일이 없다는 건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다. 일감이 없어 실직하게 되면, 그 순간 일상이 마비된다. 비록 지금 통장에 돈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는 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을 그만뒀는데, 어디서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사장님은 이런 불안을 읽었는지,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으니까 지금 많이 놀아두라고 하셨다. 조만간 또 일 들어올 거라고. 사장님 말씀처럼 얼마 뒤 거래처에서 발주서가 왔고, 견적서를 보내어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월급 루팡 신세에서 벗어난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그런데 이 기분이 며칠 가지 못 한다는 게 문제다. 사장님 말씀처럼 열심히 놀 걸..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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