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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Nov 18. 2019

공장의 일이란

공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공장이라고 하면, 대개 많은 기계들과 그 기계들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거다. 가장 많이 떠올리는 모습은 경제 동향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배경으로 깔리던 현대중공업 공장의 모습 같은 것 혹은 제철소의 뜨거운 철물이 끓어오르는 모습, 혹은 농심 공장에서 쭈욱 이어진 컨베어 벨트 위로 과자나 라면이 지나가는 모습 같은 것이 아닐까. 공장의 모습을 미디어로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공장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좀 멀다. 물론 기계도 있고, 아주 작지만 켄베이어 벨트(물건을 상하차 할 때 이용했었다)도 있고, 또 귀여운 크기의 지게차(지금은 이걸로 물건 상하차를 한다)도 있다. 있을 건 다 있지만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모습은 없다. 큰 사이즈의 완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완제품의 일부분, 특히 철강과 관련된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이다. 보통 생각하는 그런 모습, TV에서 보여주는 그런 공장의 모습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공장에서나 볼 수 있다. 내가 일하는 공장처럼 (중)소규모의 공장은 노동자의 숫자도 적을뿐더러, 공장의 대지도 넓지 않다.


철강 제조업의 경우, 요즘은 직접 사람 손으로 철을 가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게 레이저 기계를 이용해서 절단하고 사람은 그저 제대로 가공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불량이 있는지 없는지 가려내는 작업을 한다. 물론 여전히 수작업으로 철을 가공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생긴 공장이라면 다들 레이저 기계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는 편이고, 오래된 공장들도 다들 레이저 기계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레이저 기계에 도면만 그려서 넣으면 스스로 알아서 절단을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철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노동자보다는 계기를 잘 다룰 수 있고, 도면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노동자가 필요하다. 내가 일하는 공장도 역시나 몇 년 전부터 레이저 기계를 들였고, 그래서 현장에는 서너 명 정도의 노동자들만 일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서는 또 다음 기회에 계속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럼 이런 철강 제조.가공 공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니, 할 수 있는 일은 있는가? 먼저 내 전공을 밝히자면, 공장과는 1도 관계없는 역사를 전공했다. 앞서서도 밝혔듯이 절대 절대 네버!! 공장에 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공장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과를 선택했다.(물론 내 적성에 맞기도 했고). 그런데 과연 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공장의 일이란 현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 말고도 행정상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즉 회사가 유지되고, 현장에서 원활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말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 많다. 그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더불어 캐드로 도면을 그리는 일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물건을 만들 때 기준이 될 도면을 그린다. 즉 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다루는 것 외의 일은 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일을 하고 있다 하면 인문학 전공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지 싶을 것이다. 그건 살다 보니 어쩌다 그리 되었다고나 할까. 어릴 적 나름 사업에 야망이 있었던 때가 있어서(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회계를 배워둔 적이 있었고, 또 백수 시절에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어르신 말씀을 새겨들어 오토캐드 1급 자격증을 따둔 덕이었다. 공장에서 일하기 전까진 줄곧 내 전공과 관련된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회계를 배웠다는 것과 오토 캐드 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최측근 외에는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최측근엔 사장님이 포함되었고, 그래서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를 배운 것,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실무에서 능숙하게 해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는 개인의 센스와 시간의 누적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아직 배운 걸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그리고 욕도 엄청 먹었다. 그것도 못하냐고.. (엉엉엉) 일 한지 한 달만에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먼 산...). 그래도 몇 달 지나고 적응하고 나니 일에 대한 감이 생겼고, 이렇게 글을 쓸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사실 한 회사의 회계의 흐름을 알려면 1년은 근무해야 알 수 있다고 해서 아직은 완벽하게 적응했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리고 도면 그리기 작업도 아직은 쉬운 것만 하고 있어서 쉽게 해내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점점 일이 익숙해져가고 있어 약간의 걱정은 덜었다. 그런데 요즘 다른 걱정이 생겼다. 그건 다음에 이어서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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