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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Oct 24. 2019

매일 아침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어쩌다 보니 공장에..

우리 집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작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사촌 형제들, 그리고 어머니의 형제들 모두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의 친척 형제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도 어딘가이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은 아니고, 해방 이후부터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원래 할아버지는 부산 대신동 일대에 살고 계셨는데, 일제 강점기가 끝날 즘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급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 난리가 났구나 싶어 다시 고향인 청도로 돌아오셨단다. 그래서 그때부터 친척들과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명절 때면 친척들이 모여 종종 할아버지의 환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땅을 치며 안타까워한다. 그때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집이라도 한 채 슥삭하셨으면 지금 우리 집의 살림살이는 좀 더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래봤자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 이윤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농사를 짓던 집에서 어떻게 갑자기 공장을 하게 되었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굉장히 어릴 때 돌아가셨고, 그래서 아버진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동원이 되어 일을 했는데, 농사일이 너무 적성에 안 맞았다는 거다. 게다가 농사가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데 너무 오래 시간이 걸려서 더 싫으셨다고. 그래서 결국 돈 벌겠다며 부산으로 와서 공장에 취직을 하셨고, 이후 친동생인 작은 아버지와 사촌 동생들을 부산으로 다 불렀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 들도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두들 지금까지 공장 밥을 먹으며 살고 있으며, 그의 자녀들도 모두 공장에 일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나도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공장에서 일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그만두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사실 여러 차례 공장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힘들어하거나, 내가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기다렸다는 듯 공장에 나와서 일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일에 대해 비판을 넘어선 원색적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으셨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공장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음에도 결국은 이렇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한 백만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지만, 하게 된 데에는 딱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 바로 돈. 돈이 웬수지. 얼마 전까지 돈이 되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 모아놓은 돈을 다 탕진했다. 그 돈을 다시 모으려면 빨리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때마침 공장에 자리가 한 자리 비었던 터라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를 고용한 사장님(이자 작은 아버지)은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는데(수차례 사람 사기를 당하신지라), 때마침 나 같은 고급(인 줄 알았던) 인력이 싼 값에 FA 시장에 나온 걸 보고 바로 픽업! 하신 거다. 서로 목적은 달랐으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덕분에 매일 같은 공간에서 다른 꿈을 꾸며 일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몇 달 전부터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정식 직원이 되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릴 때 잠깐 와서 일 하던 것과 무척 많이 달랐다. 꼬꼬마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거 생각하고 출근했다가 제대로 안 한다고 매일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뭔가 억울한데, 그렇다고 딱히 내가 잘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욕을 한 달 정도 먹고 나니, 공장이 약간씩 익숙해졌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앞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조금씩 써 볼까 한다. 어쩌면 공장에서 일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장님에 대한 욕일 수도 있고. 무엇이 되었든 내가 일하는 곳, 공장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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