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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r 10. 2018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제바스타인 피체크의 [차단]

반전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

  리디북스에서 무료로 준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다운받아 본 제바스타인 피체크의 [차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다. 진짜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전개가 압권인 소설이다. 읽는 동안 범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서술, 안개 같던 사건이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그 실루엣이 또렷해지더니 나를 집어삼켰다. 헉.

  
  소설의 주인공은 부검의다. 범죄수사 드라마에서 시체를 해부하는 그 의사가 주인공이다. 부검의가 주인공이라 가능한 사건 전개가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부검의인 헤르츠펠트 교수의 딸 한나가 자신의 동료였던 마르티넥 스벤에게 납치를 당했고, 스벤이 사체에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헤르츠펠트 교수는 납치범을 쫓는 내용이다.  스벤의 딸 릴리가 사들러에게 강간 살해를 당했는데, 릴리를 부검한 헤르츠펠트는 릴리가 자살을 했다고 소견서를 썼다. 이에 스벤은 그 내용을 삭제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스벤은 원칙상 해줄 수가 없다고 거절한다. 이 때문에 사들러는 3년 정도의 형량을 받았다. 이에 스벤은 자신이 느낀 고통을 헤르츠펠트에게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복수심으로 한나를 납치한 것이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 구성은 아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처음부터 납치인지 총기사건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지 소설이 끝날 때나 되어서야 알아차릴 수 있다. 중간중간 납치를 당한 여성이 납치범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게 또 마지막에 반전을 준다. 그리고 끝인 줄 알고 안심했는데, 진짜 범인이 마지막에 나왔다. 정말 반전이 끝이 없는 소설이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납치범에게서 딸을 구하는 아버지를 그리는 게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강간 사건은 얼마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가에 대한 질문을 강하게 던져주는 책이다.


                                                                                                      

아동 강간범보다 탈세범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사법 당국의 문제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던 불법 카지노에 대해서는 나를 독박에 처넣고 싶어 하면서
성폭행범들에게는 그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즉시 감옥 밖에서 노역할 기회까지 줄 것을 권고하는 심리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오.
우리 법치국가에서 피해자는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하는 반면,
범인은 그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최근 우리나라에 #Me_Too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서 인지 이 소설 [차단]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성범죄 피해자가 꽃뱀으로 몰리거나, 행실이 부도덕한 여성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가해자의 인생이 망가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회이다. 목숨을 버릴 생각을 각오하고 덤비되, 절대 가해자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아야 겨우 피해자로 인정해주는 사회이니 말이다.
 

  헤르츠펠트가 딸을 찾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만화를 그리는 여성인 린다인데, 이 여성은 전남친의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을 피해서 섬으로 도망을 왔다가 그를 돕게 된다. 린다가 섬까지 도망을 와야 했던 이유는 경찰에게 남자친구의 스토킹을 신고했지만 그 남자가 지적이고 전도 유망한 남성이라는 이유로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남친은 섬까지 쫓아와서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경찰이 그 스토커를 잘만 처리했더라면 그녀가 그곳까지 도망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결국 린다는 자력(?)으로 전남친을 물리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은 독일 작가가 쓴 책인데, 독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성범죄에 무척이나 관대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어느 나라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은 똑같다는 사실이 소름 돋기도 하고, 이 세상에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부검의가 주인공이라 흥미 있게 읽기 시작한 책이 사회문제를 화두로 던져주고 끝이 났다. 이런 책이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는 책이 되는 사회가 얼른 오길 바란다.            



*책 정보

- 저자 : 제바스티안 피체크, 미하엘 초코스

- 출판사 : 단숨

- 출간일 : 2015.02.27.

- 페이지 : 485쪽

- 전자책 출간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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