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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Feb 23. 2019

왜 쓰레기는 담임 눈에만 보이는가

거리두기의 어려움

담임을 맡게 된 해의 3월엔 늘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이곤 합니다. 그러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그런 마음들이 조금 진정되고 나면 집에 가서 아내에게 올해 우리반 애들 좀 좋은 것 같다고 말하죠. 언젠가 또 그 말을 했더니 아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절 보며 조용히, 하지만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당신은 늘 학기초엔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연말엔 온갖 욕을 다하지.”

아내의 통찰력(!)에 굉장히 놀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부푼 희망과 애정이 연말엔 눈 녹듯 사그라들고 분노와 짜증만이 남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교사들끼리 가끔 농담으로 ‘교실 바닥의 쓰레기는 언제나 담임 눈에만 보인다’고 말합니다. 옆 반에 수업을 들어가도 휴지가 떨어져있거나 지저분하면 그저 치우라고 몇 마디 하거나 그마저도 안할 때가 많은데 우리반에만 들어가면 온 사방에 잔소리할 것들만 잔뜩 보입니다. 쓰레기도 주워야하고 낙서도 지워야하고 커튼도 좀 예쁘게 걷고 책상줄도 맞추고 칠판도 깨끗해야 합니다. 여기에다 반 아이들과 마음이 잘 맞으면 급기야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반 애들 혼내는 것만 봐도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많죠. 그럼 또 그 녀석을 불러다 자초지종을 묻거나 달래주거나 해야될텐데 일단 또 큰소리부터 나갑니다. 도대체 전 왜 그랬을까요.

고등학교에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담임 교사와 거리감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갓 입학한 녀석들은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벌이지만 학년이 끝나갈 때쯤엔 완연히 ‘우리반’이라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2학년이 되면 이제 자기들도 선배 노릇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슬슬 담임이 안중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남녀공학이라면 한창 연애에 바쁠 시기이기도 하죠. 3학년들은 입시가 코 앞에 닥쳐서 제 발등에 불 끄기도 바쁜지라 담임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도 신경안씁니다. 오히려 진학할 대학이나 학과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사이가 더 멀어지기도 하구요.

대부분의 담임 선생님들도 비슷한 생각이실 것 같습니다. 자기 반 학생들의 앞날이 뒤엉켜버리길 바라며 저주를 퍼붓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다만 ‘우리반’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모범생이든 불량학생이든 무단 결석 하루는 동등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뜨끔했던 적이 있습니다. 늘 지각하던 녀석과 한 번도 지각하지 않던 녀석의 무단 결석은 과연 제게 동등한 무게와 가치로 다가왔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죠.

그러고보면 담임을 하면서 저는 ‘내가 꿈꾸는 담임‘, ‘내가 좋아하는 학생’의 모습만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마음이 잘 맞을수록 (혹은 그렇게 느낄수록) 저만의 틀은 점점 더 공고해지고 그게 깨지는 순간엔 서로 상처만 남게되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서글픔이 밀려오던 어느 때, 결국 제 욕심만 앞서서 그랬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저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었을까요? 적당한 거리감은 배척이 아니라 오히려 배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10년 넘게 담임을 하고 나서야 조금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좋아했던 학생들도 많았지만 싫어했던 학생들도 많았고, 그 갭을 줄일 수 있는 담임이라면 좋은 담임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나쁜 담임은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리두기. 쉽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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