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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진 Nov 01. 2022

너에게 쓰는 첫번째 편지

네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오전 2시 30분

불현듯 눈이 떠졌고, 치마 아래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왈칵 쏟아져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양수인가?'

'만약 양수라고 하면 이제 뽀랑이가 나오는 건가?'

'산부인과에 가려면 출산 가방을 싸야겠네?'


변기에 앉아서 갖가지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2번째 물이 쏟아졌다. 검색해보니 양수가 터지고 나면 24시간 이내, 늦어도 48시간 안에는 무조건 출산을 해야 한단다.


당장 할 수 있는 임시 처치를 끝내고 쿨쿨 자고 있는 오빠를 깨워 상황을 설명했다. 새벽에 자고 있는데 양수가 터졌고, 벌써 2번이나 쏟아졌다고. 빠르게 출산 가방을 싸고 산부인과로 가야 한다고.


잠에서 덜 깬 오빠는 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으나 여전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간이 없었다. 양수가 부족해지면 아기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빠와 나는 역할을 나눠서 해야 하는 것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출산 가방을 열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출산 때 필요한 서류나 준비물을 체크했다. 또 늦으면 하루 꼬박 혼자 있어야 하는 뽀밍이(반려견)를 위해 사료를 채우고 물을 담고 편히 잘 수 있게 자리를 정비했다.




오전 3시 30분

양수가 터진 지 1시간 만에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다니고 있던 산부인과 분만실로 갔다. 내진을 했고 양수가 터진 게 맞다고 하셨다. 코로나 검사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들은 출산 준비에 분주했고 출산 전 필요한 검사를 끝내고 동의서를 다 작성하고 나니 평화의 시간이 잠깐 찾아왔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정신은 몽롱하고 여전히 지금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오빠와 서로를 바라보며 헛헛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양수가 터지기 몇 시간 전까지 일을 했고,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호기심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마음의 준비를 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출산 준비를 하려던 찰나, 분만실에 누워있는 상황이라니.




오전 5시

대기하는 동안 잠이 들었고 간호사가 와서 다급히 깨웠다. 양수는 터졌는데 아직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서 최대한 빠르게 분만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유도 분만을 위해 6시부터 촉진제를 투여하기로 했다. 유도 분만은 또 예상 밖의 일이라서 더 긴장됐다.


촉진제를 투여하면 바로 진통이 시작될 거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정말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는 걸까. 마음의 준비를 해보려 해도 이 모든 상황이 여전히 낯설고 새삼스러웠다.




오전 6시

간호사 말대로 촉진제를 맞자마자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생리통 정도로 시작되더니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세졌다. 나도 모르게 온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아랫배는 물론이고 허리 통증까지 느껴져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학적 도움 없이 통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 출산 때의 고통은 생리통의 100배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옆에서 지켜보다 못한 오빠가 간호사를 불렀지만 자궁문이 3-4cm 열릴 때 까지는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수시로 간호사가 들어와 내진을 했고 정신이 반틈 나가 있을 무렵 자궁문이 3-4cm 열렸다며 무통 주사를 놔준다고 했다. 그런데 10분, 20분이 지나도 간호사가 오지 않았고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을 때쯤 간호사가 돌아와 아기 심장 박동이 줄어들어서 무통을 맞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경과를 보자고 말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오전 8시

무통 주사는 촉진제처럼 바로 반응이 오진 않았고 20-30분 지나고 효과가 나타났다.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그 사이 촉진제를 한 단계씩 3번이나 올렸다. 촉진제 단계가 올라갈수록 진통도 상상 이상으로 심해졌다. 이때부터 느꼈던 고통은 이루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느리지만 빨리, 빠른 듯 하지만 느리게 흘렀다.




오전 10시

시간이 지날수록 무통 효과가 줄어들었다. 아기가 자궁 밑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촉진제 단계를 올리고 올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개구리 자세로 힘주기를 시작했다. 양쪽 무릎 벌려 양손으로 잡고 젖 먹던 힘까지 힘을 주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진통이 가장 심할 때 힘주기를 하면 진통이 조금 덜 느껴진다.


진통은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패턴처럼 일정하게 찾아왔다.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고 차분히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자세가 불편하기도 하고 진통이 너무 심하다 보니 호흡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통이 오는 걸 고스란히 느끼고, 진통이 가장 최고조로 달하는 순간에 자세를 바로 잡고 차분히 호흡을 하며 힘주기를 해야지만 고통의 시간들을 버틸 수 있다.




오후 12시

자궁문 10cm가 열렸지만 슬프게도 아기는 여전히 자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때 간호사가 아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엄마에게 온전히 달렸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솔직하게 말해주는 건 좋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더 힘을 냈을 텐데, 벌써 6시간째 잠도 못 자고 진통을 겪으며 힘주기를 했지만 앞으로도 똑같이, 아니 더 해야 한다는 그 말이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더 이상은 힘들다고, 수술을 해달라고 애원했다. 간호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지금까지 버틴 게 아깝지 않냐며 조금만 더 같이 힘내자고 했다.


그 간호사도 나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분만 전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힘주기와 호흡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줬다. 처음엔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 한 그분이 미웠지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모습에 나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오후 2시 43분

자궁문이 10cm 열린 순간부터 이때까지 어떤 정신으로 버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약 없는 진통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힘주기를 했고, 호흡이 불안정할 때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호흡을 되찾으며 30시간 같은 3시간을 보냈다.


양수가 터지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기도 했고, 산모도 아이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시간을 더 끌다간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아기를 꺼내기 위해 간호사들이 배를 눌러 아기를 밑으로 밀어내고 흡입기로 아기 머리를 당겨내기로 했다.




오후 2시 50분

마지막, 정말 마지막,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힘주기를 했고, 최종적으로 7-8번의 힘주기로 뱃속에 있던 뽀랑이가 태어났다.


그 순간의 기쁨은 없었다. 그저 배에서 큰 덩어리가 쑤욱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진통이 사라지는 순간 두 눈을 감았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잠깐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뽀랑이가 내 가슴 위에 안겨있었고 그제야 뽀랑이가 태어난 것이 실감이 났다.


'어쩜 엄마를 이렇게나 힘들게 했니?, 아직 나오고 싶지 않았는데 양수가 너무 빨리 터져버린 거지?'


끝까지 내려오지 않은 뽀랑이가 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만큼 뱃속에서 힘들었을 결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 무탈하고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한 일이야. 정말 고마워.




여섯 시간 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에 누워있었고, 오빠는 내 옆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문득 진통으로 괴로워하며 정신을 놓고 있을 때 나 혼자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며 대신 아파주고 싶다고 말하던 오빠가 생각났다.


비록 출산의 고통은 나 혼자 겪었지만 그 아픔과 힘듦은 오빠도 옆에서 고스란히 느끼고 보았으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테다.


부모가 되어 함께 육아하며 살아갈 때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오늘을 잊지 말고 함께 의지하며 이겨나가야지. 혼자는 어렵겠지만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은 가지 않지만, 그게 어떤 일이든 늘 곁에 오빠가 함께 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오빠가 늘 함께 할 거란 확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남편이자 아빠가 오빠라서 참 다행이야.




Dear. Logan

로건아 엄마가 10개월 동안 널 품으면서 마음이 힘든 적도 있었고, 몸이 아프진 않았지만 불편하고 힘든 적도 많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가진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 오히려 임신 후기엔 원래 내 몸이었던 것처럼 편하고 너와 한 몸이라는 것에 참 감격스러웠어.


너 또한 좁은 공간이지만 엄마와 함께라는 것에 행복했겠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너를 품고 아빠가 밤바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듬뿍 만나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며 참 행복한 10개월을 보냈어.


네가 태어나는 이 날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사랑과 도움을 받았는지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날이 올 땐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늘 마음과 몸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받는 법을 모두 아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본보기가 될게.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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